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nah Apr 25. 2024

고무공을 떨어트리자

유리공 말고!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불호만 남은 불혹’이라는 매거진을 좋아했다. 나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지만, 나 또한 불호가 가득하였기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아들 친구를 만났는데, 학원 끝나고 편의점에서 대충 밥을 때우고 또 부모님 오실 때까지 태권도 갔다가 오면 8시가 넘는다면서 묻지도 않은 말들을 했다. 그리고 다시 딸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 근처에 혼자 앉아 있는 그 친구를 보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괜찮으면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자 했다. 이런 행동은 절대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 아님을 안다. 요즘엔 되려 욕먹을 행동이다. 아이도 어른도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고, 그로 인해 내가 의도치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실로 그런 행동은 다신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무슨 말인지 알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시골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때는’ 이웃 사랑이 남아 있었다. 친구네 엄마가 간식도 챙겨주고, 동네 할머니가 들여다봐 주고 말이다. 지금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일까 생각하면, 차마 누구에게 푸념조차 꺼내기 힘든 일이다. 다만 한 아이의 부모로서 내 아이도 누군가 한번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혼나야 할 때 좀 혼내 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 이 세태가 안타깝다.

  아이들과 같이 스파게티를 해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가 태권도 갈 시간이 되어 어서 보냈다. 혹시 학원이라도 안 간다고 할까 봐 급하게 보내면서도 속이 편치 않았다. 사실 동네에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심지어 7살, 1학년 친구들이 주말에 집에 혼자 있는 경우도 더러 보았다. 이 상황이 나만 속상한가. 나만 불호인가.

  친구들을 만나, 나는 이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고 하소연했다. 친구들도 아이 둘 씩 나아 기르는 터라, 자신들도 일 안 하고 아이만 돌보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쉽냐는 슬픈 답이 돌아왔다. 나 또한 맞벌이에 아이 둘 길러 보고, 아이들 병원에 발이 묶여 일도 육아도 엉망진창이었던 적이 많기에, 더욱 슬프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더 화가 났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다. 어차피 후회하겠으나, 최소한으로 후회할 만큼만 행동하는 것이 좋다. 나는 내가 육아-일-건강-등등의 저글링을 무척이나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에 내가 (슬프게도 우연히) 떨어트린 공은 고무공이 아닌 유리 공이었다. 회복탄력성이 있어 다시 튀어 오르는 고무공이 아닌, 떨어트려서 깨져버리면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회복이 안 되는 ‘건강’이라는 유리 공. 후회한 들 이미 늦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내게 또 다른 유리 공은 아이들 일 것이다. ‘가정’은 그 안에 속해 있는 아이들과 남편은 떨어트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들 나처럼 이미 엎질러진 물 위로 눈물 흘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정말 생각보다 금방 자라고, 우리가 없는 하루하루가 모여 가슴에 걷잡을 수 없는 큰 구멍이 생긴다. 나는 내 아이들이 내가 겪은 공허함과 말 못 할 외로움을 견디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에 나가면 누군가는 ‘너 참 모순적이다’ 하거나, ‘넌 욕심이 너무 많아’ 라거나, ‘넌 왜 그렇게 참고 살아? 착한 척이야?’ 할 수 있고, 그 수많은 비판들을 모아 더 많은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어느 순간 나를 만들고, 내가 원치 않아도, 고치려 애써도 메꿀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나의 일을, 나의 삶을, 돈이나 명예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기다릴 수 있지만, 건강이나 가족과 같은 것들은 기다리지 않고, 어느 순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얘기할 것이다. 직장이라는 게 어디 기다려 주냐고, 승진할 때 해야지 놓치면 끝이라고, 그러나 짧은 생이지만, 앞서간 많은 이들의 삶을 토대로 볼 때, 성공은 생각보다 언제든, 일찍이든 늦게든 올 수 있고, 일은 절대 깨져 없어지지 않는다. 그 고무공은 다시 튀어 오른다.

  만약 당신이 저글링 하는 많은 공들이 그 균형을 잃고 떨어지려 한다면, 그러기 전에 한 두 개 내려놓는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 나를 예로 드는 것은 실로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때때로 있지만, 내가 정말 나의 생때같은 아이들을 두고 천국으로 갔다면, 나는 아마 천국에서도 눈감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 내가 없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어 떠돌았을 수도.


  앞으로 계속 나의 불만들이 이곳에 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한 아줌마는 절대 가난하지 않지만 배곯은 채로 밤을 나는 아이들을 이상하게도 두고 볼 수가 없다. 앞으로도 자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이상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이전 09화 투표하러 가면서 소설책 집어 들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