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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10. 2024

21화. 완벽한 이별이란 없다.

연재소설 <아파트에게>


 “시공사 선정이 잘 될지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그게 제일 큰일이라고 하던데.”

 “우리 아파트가 고층이잖아요. 그래서 시공사 정하기가 만만치가 않은가 봐요.”

 “이러다가 십 년이 지나도 재건축 안 될지도 모르겠어요.”

 “뭐, 급할 게 뭐 있어요. 살던 그대로 살면 되는데.”

 “하긴, 막상 어디론가 이사를 가야 한다면 좀 막막할 거 같아요. 우리 아파트가 좀 낡고 주차장이 좁아서 그렇지 사람 살기는 참 좋은 곳이잖아요. 그죠?”

 “그럼요.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교통이 좋으면서 울창한 숲을 가진 아파트 단지가 또 어디 있겠어요?”

 “맞아요. 애들 학교도 괜찮고.”

 “사실, 저희 남편은 여기 떠나기 싫다고 해요. 여기가 자기 고향 같다고. 저희 집은 결혼하자마자 여기서 신혼살림 차리고 줄곧 살았으니까요.”

 “어머, 저희도 그래요. 민정이도 여기서 낳고 키웠는데, 우리 유나도 여기서 키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여기가 진짜 고향 같아요. 대전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는데, 여기서는 그 두 배를 살았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105동에서 209호랑 저희만 이 아파트 토박이네요.”

 “세찬이네 집이 얼마 전에 이사 갔으니까, 맞네요!”

 “근데, 여기 재건축되면 이 나무들은 다 어떻게 될까요?”

 “그러게요. 그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우리 남편은 이사 갈 걱정은 안 하고, 요즘 매일 그 걱정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난 209호 아주머니와 301호 아주머니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두 분 다 여전히 곱고 단아한 모습이었지만, 어느새 두 분 머리 위엔 윤기를 잃어버린 흰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301호 아주머니는 얼마 전 301호 아저씨가 심하게 아프고 나서, 부쩍 더 늙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301호 아저씨가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때 저만치서 꼬마 하나가 가방을 빙빙 돌리며 사뿐사뿐 걸어오는 게 보입니다. 209호 아주머니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민정이의 딸, 유나가 학교에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민정이와 똑 닮은 유나도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폴짝폴짝 뛰어옵니다. 209호 아주머니는 301호 아주머니에게 눈인사를 하고 유나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기특하게도 유나는 301호 아주머니에게도 꾸벅 인사를 합니다. 301호 아주머니도 유나의 인사를 받으며 흐뭇하게 웃습니다. 301호 아주머니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209호 아주머니와 유나의 다정한 뒷모습을 길게 누운 오후 그림자처럼 꽤 오랫동안 지켜봅니다.


##


 <장미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한빛 건설 확정!>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가 결정되었다는 플래카드가 아파트 곳곳에 걸렸습니다. 만약 내게 심장이란 것이 있었다면, 오늘은 저만치 내려앉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301호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아파트 입구에 걸린 커다란 플래카드를 보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301호 아저씨가 플래카드를 보고 내뱉은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재건축사업 시공사 확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아파트에서 이렇게 멋진 단풍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시공사가 확정되었다는 것은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렇게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아파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겁니다. 조금 더 주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재건축 시공사 확정은 내가 살던 세상과의 완벽한 이별을 뜻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아직 그 완벽한 이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속없는 누군가는 완벽한 이별을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이별이라는 것이 준비를 한다고 완벽해질 수 있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이별이 없듯이, 완벽한 이별도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이별은 말 그대로 이별일 뿐입니다.




**[   2018년 시월 그대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걷는 산책   ]**


저만치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살이 빠지고 어깨가 조금 굽었지만, 젊은 시절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나는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오늘도 내 눈 속에, 내 기억 속에 가득 담아본다.

 “뭐 해? 빨리 안 오고!”

앞서 걸어가던 남편이 뒤돌아보며 뒤쳐진 나를 재촉했다. 남편은 잠시라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비교적 사이좋게 꽤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 같다. 사랑보다는 의리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그리 녹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 사람은 다른 부부들에 비해 각별했고, 또 애틋했다.

  “좀만 천천히 가! 급한 일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빨리 가?”

내가 그렇게 투정을 부리자, 남편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괜히 하늘을 쳐다보는 척하며 나를 기다려준다. 나를 기다리는 남편의 뒤통수를 바라보다가 울컥 울음이 차오른다. 힘겨웠던 지난 몇 년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건강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암이란 것은 그리 쉬운 병이 아니었다. 남편은 수술만 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남편처럼 담담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전부였던 남편이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자꾸만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 손을 놓쳐 버릴까 두려운 아이처럼 꼭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치게 될까 봐 나는 두려웠다. 덕분에 위로를 받아야 할 남편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아니, 나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내가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남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남편은 내가 없으면 혼자서 라면도 제대로 끓여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남편을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런 친구들의 질책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부인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없는 내게 남편은 내 아이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 대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주어야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다행히 남편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1차 항암치료 또한 잘 견뎌냈다. 남편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나자, 나는 서둘러 남편에게 집안일 이것저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세탁기 사용법, 전기밥솥 사용법 등등 남편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일들부터 시작해 지금은 간단한 빨래와 끼니를 때우는 방법까지 학습의 강도를 점점 높였다. 물론 처음에 남편은 이런 내게 불만이 많았다. 이제 겨우 건강을 회복한 사람에게 왜 이런 일까지 시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혼자 남을 준비를 할 나이가 됐잖아.”

남편은 그날 이후 별 다른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남편도 나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60대가 되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가 없는 세상을 준비시켜야 하는 것이다.  


 “뭘 그렇게 자꾸 쳐다봐?”

나란히 걷던 남편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까부터 남편의 옆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왜? 좀 쳐다보면 안 돼? 닳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당신이 넘어질까 봐 그러지!”

남편의 걱정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남편과 나란히 걷는 지금의 행복이, 여유로움이 그 어떤 순간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지금 이 순간순간들을 사진 찍듯 모두 담아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렇게 사진을 찍는 것처럼 남편의 모습을, 이 순간의 행복을, 마음속 깊이 담고 또 담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별 준비라도 되는 것처럼.




2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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