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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Nov 09. 2023

모든 건 상상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든 건 상상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정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 열심히 공부할 텐데...^^;;

어느 50대의 뒷북 같은 상상 말이다.


 나는  노어노문학과 90학번이다.

하지만 러시아어를 잘 못한다.

전공공부를 완전히 등한시했기 때문에...

자랑 아님 주의


아무튼 그 뒷북 같은 상상-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이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나이 50이 넘어서 ;;


이제부터  대입수시를 보고,

52세에 22학번 신입생이 되어버린,

50대 평범한 주부,

자칭 라테! 의 대학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꽤나 잘 그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대표로 어린이 신문사나

서울시가 주최하는 그림 대회에서

입상을 했고

세계 아동미술전에서 은상을 타서

어린이회관 전시를 하기도 했다..

6학년이 되자  미술반 선생님께서

예술중학교 진학을 권유하셨다.

예술중학교에 가면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나는 마냥 설레었다.  


하지만  상담을 하고 오신 엄마는

화가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밥 굶는다며..

안된다고 하셨다.

유난히 엄마를 무서워했던 나는

그 말 뜻을 잘 이해도 못한 채로 눈물만 흘렸다.

 

그날 이후 그림이 싫어졌다.  

미술시간이면  아무렇게나  그려놓고  딴짓을 했다.  

학교 대표로 나가는 일도 없어졌다.  

커서 무엇이 되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3 담임선생님의 의지로;

관심도 없던  노어노문학과에 들어갔다.  

설상가상 러시아어는  너무도 어려웠다. ㅎㅎ

딸이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엄마는 러시아어과를 나왔는데 왜 러시아어를 못해?  '


부끄러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공부를 안 한 것엔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미대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고 싶다.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하곤 잊어버렸다.


그러다 2020년 봄. 뜬금없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느즈막히 아침밥을 먹고

화장실 청소를 막 시작했는데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세면대 거울 앞에 올려놓은

핸드폰 화면에 서울 119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그때는 동탄에 살고 있었기에

서울이란 말에 더 놀랐다.


 왜 서울 119가...


짧은 순간이지만

온갖 불길한 상상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119 대원분은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하셨다.(

그 말에 더 놀란..)

남편분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머리에 출혈이 심하고  여러 군데 골절이 있다고 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듣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다녀올게

하며 손을 흔들며 출근한 남편은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 신호를 위반한 차에 치었고

뇌출혈,  골반과 다리에 다발성 골절의 중상을 입었다...

가해 운전자는 여성이었는데

실수로 신호등을 못봤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남편은

백주대낮에 파란불에 건너다

차에 치인 거였다…


그날로부터  일 년여...

무슨 정신인지 기억도 안나는 상태로

나 홀로 사고처리와 남편 간병에 매달렸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남편은 무탈히 회복을 했고,  

복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게 문제가 일어났다..

남편을 간병하느라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있던

사고당시의 충격과 외상이 뒤늦게 터져버린 거였다.


핸드폰만  울려도 심장이 벌벌 떨렸고

카톡에 조금만 답이 늦어도 사고가 난 줄 알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가 안되면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회사로 전화를 해서 민폐를 끼쳤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빨간 피가  흥건한 붕대에 친친 감긴  남편의 얼굴과

나 홀로 수술과 간병하며 겪은 일들..

경찰서와 법원을 다니며

사고처리과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몰려와 잘 수도 없었다.

우울증 약과 수면제, 신경 안정제로

일상을 이어갈 뿐

내 삶은 무너져버렸다..


그런데 왜였을까.. 그 수렁의 나날에서  

문득,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미술을 배우고 싶다는 꿈..

살기 위해서  무의식 저 밑바닥에 묻었던

꿈을 꺼낸 걸까..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2021년 51세의 나이에  

대입 수시를 위해

계원예대 융합예술과에 지원했다.


융합예술과는

미술, 문학, 영화, 사운드, 설치, 미디어 등

전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적인 예술교육을

지향하는 과였다.


취향저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죄 한데 모여있다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그래 , 결정했어!'


문제는 시험준비였다.   

막막한 심정으로 종일 인터넷을 검색하다 융합예술과 재학생의 글을 보게 되었고

무작정 쪽지를 보냈다.

금세 답이 왔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쪽지를 열어보았다.


 "오! 같이 공부하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궁금한 것 있으시면 다 물어보세요"


'같이 공부하면,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글자들이 폭신한 이불처럼 나를 덮어주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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