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상상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정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 열심히 공부할 텐데...^^;;
어느 50대의 뒷북 같은 상상 말이다.
나는 노어노문학과 90학번이다.
하지만 러시아어를 잘 못한다.
전공공부를 완전히 등한시했기 때문에...
자랑 아님 주의
아무튼 그 뒷북 같은 상상-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이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나이 50이 넘어서 ;;
이제부터 대입수시를 보고,
52세에 22학번 신입생이 되어버린,
50대 평범한 주부,
자칭 라테! 의 대학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꽤나 잘 그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대표로 어린이 신문사나
서울시가 주최하는 그림 대회에서
입상을 했고
세계 아동미술전에서 은상을 타서
어린이회관 전시를 하기도 했다..
6학년이 되자 미술반 선생님께서
예술중학교 진학을 권유하셨다.
예술중학교에 가면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나는 마냥 설레었다.
하지만 상담을 하고 오신 엄마는
화가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밥 굶는다며..
안된다고 하셨다.
유난히 엄마를 무서워했던 나는
그 말 뜻을 잘 이해도 못한 채로 눈물만 흘렸다.
그날 이후 그림이 싫어졌다.
미술시간이면 아무렇게나 그려놓고 딴짓을 했다.
학교 대표로 나가는 일도 없어졌다.
커서 무엇이 되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3 담임선생님의 의지로;
관심도 없던 노어노문학과에 들어갔다.
설상가상 러시아어는 너무도 어려웠다. ㅎㅎ
딸이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엄마는 러시아어과를 나왔는데 왜 러시아어를 못해? '
부끄러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공부를 안 한 것엔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미대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고 싶다.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하곤 잊어버렸다.
그러다 2020년 봄. 뜬금없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느즈막히 아침밥을 먹고
화장실 청소를 막 시작했는데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세면대 거울 앞에 올려놓은
핸드폰 화면에 서울 119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그때는 동탄에 살고 있었기에
서울이란 말에 더 놀랐다.
왜 서울 119가...
짧은 순간이지만
온갖 불길한 상상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119 대원분은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하셨다.(
그 말에 더 놀란..)
남편분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머리에 출혈이 심하고 여러 군데 골절이 있다고 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듣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다녀올게
하며 손을 흔들며 출근한 남편은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 신호를 위반한 차에 치었고
뇌출혈, 골반과 다리에 다발성 골절의 중상을 입었다...
가해 운전자는 여성이었는데
실수로 신호등을 못봤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남편은
백주대낮에 파란불에 건너다
차에 치인 거였다…
그날로부터 일 년여...
무슨 정신인지 기억도 안나는 상태로
나 홀로 사고처리와 남편 간병에 매달렸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남편은 무탈히 회복을 했고,
복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게 문제가 일어났다..
남편을 간병하느라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있던
사고당시의 충격과 외상이 뒤늦게 터져버린 거였다.
핸드폰만 울려도 심장이 벌벌 떨렸고
카톡에 조금만 답이 늦어도 사고가 난 줄 알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가 안되면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회사로 전화를 해서 민폐를 끼쳤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빨간 피가 흥건한 붕대에 친친 감긴 남편의 얼굴과
나 홀로 수술과 간병하며 겪은 일들..
경찰서와 법원을 다니며
사고처리과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몰려와 잘 수도 없었다.
우울증 약과 수면제, 신경 안정제로
일상을 이어갈 뿐
내 삶은 무너져버렸다..
그런데 왜였을까.. 그 수렁의 나날에서
문득,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미술을 배우고 싶다는 꿈..
살기 위해서 무의식 저 밑바닥에 묻었던
꿈을 꺼낸 걸까..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2021년 51세의 나이에
대입 수시를 위해
계원예대 융합예술과에 지원했다.
융합예술과는
미술, 문학, 영화, 사운드, 설치, 미디어 등
전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적인 예술교육을
지향하는 과였다.
취향저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죄 한데 모여있다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그래 , 결정했어!'
문제는 시험준비였다.
막막한 심정으로 종일 인터넷을 검색하다 융합예술과 재학생의 글을 보게 되었고
무작정 쪽지를 보냈다.
금세 답이 왔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쪽지를 열어보았다.
"오! 같이 공부하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궁금한 것 있으시면 다 물어보세요"
'같이 공부하면,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글자들이 폭신한 이불처럼 나를 덮어주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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