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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Nov 13. 2023

어머님! 학부형은 못 들어가십니다.

교문에서 입구컷 당한 라테...


학생은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글을 써보면 좋다고 했다.

 다행히도 sns에 그런 글들을 꾸준히 써왔어서

바로 전송을 했다.  


"우리 과랑 취향이 잘 맞으시네요!!!  지금 알바 중이라, 집에 가서 피드백드려도 될까요?"


알바 중에 답변을 준 거였다니..

mz세대는 막연히 다 개인주의적인 줄 알았는데..

일면식도 없는 주부를 도와주려는

학생의 순수한 마음에 라테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새벽까지 학생과 나는 카톡으로

켄 로치, 아네스 바르다, 하룬 파로키 같은 작가들을

이야기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좋은 경험...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렇게  학생은 나에게 멘토가 되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우울감과 불안은 수시 공부를 하는 동안 눈 독듯 사라졌다.


            어머님! 학부형은 못 들어가십니다!



수시날 아침이 밝았다.  

비닐커버에 수험표를 넣고 몇 번이고 확인한 뒤

날씨를 체크했다.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하니

고령자는 심혈관질환을 조심하라는 뉴스...

밖에서 꽤 오래 대기한다는데 쓰러지면 어쩌지?

51세 수험생의 코미디 같은  걱정....

큰 텀블러에 뜨거운 민트차를 가득 담고,

핫팩과 누비 방석, 가죽장갑에 목도리까지!

보부상 모드로  드디어 출발!


의왕시의 학교까지 고맙게도 남편이 태워다 주었다.

오는 내내 그냥 담담했다.

하지만 멀리 교문이 보이자 현실감이 들면서

손바닥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저만치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교문과 미술관이 보였다.  


사실 나는 꼭 일 년 전에 이곳에 왔었다.

시험 보러 들어가는 딸을  배웅하는

학부형으로 말이다.

일 년 후, 내가 딸의 후배가 되기 위해

저 문으로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못한 채로..


코로나로 인해 큰 교문 대신,  

작은 쪽문을 이용해야 해서

 좁은 문 앞에  수험생들과 배웅하는 학부형들이

병목현상을 빚고 있었다.  


'앜. 저 사이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 미치겠다...'


사건이 일어난 좌측 출입구;;


 긴장하지 말고 잘하라는 남편의 얼굴을 뒤로하고

 롱패딩 모자를 눈앞까지 푹 뒤집어쓰고

차에서 내렸다.( 혹시나 보통 수험생처럼 보일까 하는 무리수 ).

그렇게 슬금슬금 수험생들 무리에 섞여드는데 성공,

 자연~~스럽게!  교문 안으로 진입하는가 싶었는데...


"어머님! 학부형은 못 들어가십니다.!!!"


교직원인 듯한 중년 남성이 나를 가로막으며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험생 자녀를 학교 안까지 따라 들어가려는  

몰지각한 학부형으로 오인했던 듯...

 학부형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으헉....'


자식 또래 수험생들 사이에서  

당연히 라테가 튈 거란 생각은 했지만

 교문 입구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가까스로 멘털을 부여잡으며

수험표를 찾아 들이밀었다.


"저 학부형 아니에요, 수험생이에요..."


 남성의 눈이 커지더니 수험표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 아이코.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가세요.'


라는  말을 기대했건만...

남성은 멀뚱멀뚱 날 보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다른 아이들은 서둘러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험표도 보여줬는데, 어쩌라는 건지...

늦으면 이 사람이 책임질 것도 아니잖아!'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그 남성을  밀치다시피 하고  

교문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가파른 언덕길을 헉헉 대며 오르는 동안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들끓었다.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이나 봐... 어떡해.ㅠㅠ


자신이 한없이 왜소해지면서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

 절묘하게도 그 순간 학생에게 잘 들어갔느냐는

문자가 왔다.


"저 문 앞에서 저지당했어요....  

그냥 도로 집에 갈까 봐요...ㅠㅠ"


" 평범한 수험생은 아니니까  오해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오늘  시험을 잘 보는 거예요.  

오직 입시만 집중하세요!!! "


 학생의 말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풀리면서

정신이 들었다.


' 그래 맞아, 난 여기 대입 수시를 보러 온 거야.

집중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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