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익 Nov 15. 2023

라테인생 최초 수시! 도전!

feat  합격자 발표

   


        나 지금 떨고 있니



조교인 듯한 학생이  한 줄로 서라고 외쳤다.  

우르르, 모여드는 아이들이 사이로

나도 주섬주섬 끼어들었다.


"자!  모이세요. 이제 입장합니다. "


'으악. 나 지금 떨고 있니...'


겉으론 태연한 척 학생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

심장은 터질 것처럼 망방이질 쳤다.ㅠ

대열 속에서 라테의 존재감은 폼 미쳤다.;; 그 자체.

누가 봐도 아침 등산 나오신 어머님인 내 비주얼;;

몇몇 아이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백여 명의 열아홉스무 살 아이들 사이에

나 홀로 51세의 심정....

내가 나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ㅠㅠ

이젠 나갈래도  나갈 수도 없다.


"융예과, 00 강의실로 이동합니다"


학생들을 따라 처음 보는 공간들을 지나는 동안   

마치 이 세계와 내가 분리된 듯한 이물감마저 드는

라테...

 

"자 모두 본인 이름표가 붙은 책상을 찾아 앉으세요.!"


긴장감 최고조의 수시 시작 직전,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보니 급 밀려오는 현실자각타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 다시 돌아갈래!

.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얼결에 시험지를 받아 든다.


두구두구두구….


1차 시험 문제

씨앗과 우주를 연결/  관통하는 주제를
그림과 글로 표현하시오.


음….


응??


아...


아앜......!!!


씨앗? 우주?

씨앗호떡?

아... 오……


  요즘 서타일; 시험은 이런 것인가??

사각사각. 사각사각

 강의실 가득 펜 굴리는 소리들...


'음 다들 잘하고 있구나. 역시 mz는 다르네....'


난감한 라테의 눈에 들어오는 건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

여기까지 오는데 몇십 년이 걸렸는데...

내 안에 든 이야기는 다 하고 가야 하지 않아?...

 혹시 알아?


‘mz들이 못하는 생각을 라테가 할지!'


셀프, 아자아자! 파이팅! 을 외치며 펜을 집어든다.

남은 시간은 40분 남짓.  


째깍째깍


시계 초침소리가 엄청 크게 들린다.

우주와 씨앗으로 궁지에 몰린 아날로그 라테는

수시 ai로 빙의하고자 몸부림친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불현듯 평소 좋아하는

반야심경의  구절이  떠오른다.

그 구절을 모티브로 인간과 우주, 씨앗을 매개로

공과 색을 표현하고자 몸부림치며

시를 써 내려가는 라테..

  그래! 잘하고 있어!  

뭔가에 빙의된 듯  마지막 행까지  끝내고
연필 일러스트까지 채워 넣어 마무리한다.


이어지는  2차 심층 면접,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대기실로 들어갔다.

우리 딸 또래 여학생과 남학생, 그 사이에

내가 나란히 앉았다;;

눈에 장난기가 그득한 귀여운 여학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본다.


'내가 날 봐도 웃긴데 학생은 얼마나 웃기겠어. 아휴...'


 딸 생각이 나면서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 내가 너무 늙었죠?  ^^'


학생이 갑자기  엄지 척을 한다.


"아뇨, 아까부터 봤는데  너무 멋지세요"


옆에 있던 남학생도

맞장구를 치며 더블 엄지척을 해보인다.


'응??'


 엄마 또래 아주머니가
수시 보겠다고 얼쩡거리는 게  
안쓰러웠던 걸까..


격려해 주는 학생들의 속 깊음에 울 뻔 한 라테....

학생들은 너무 떨린다고 했다.

사실 난 더 떨렸지만, ;;

명색이 엄마뻘인데

아이들을 안심시켜 보는 라테


“괜찮아. 교수님들도 다 사람인 걸.
편하게 말하고 가요.!"


꼭 합격해서 다시 만나자고 파이팅을 외치며

셋이 면접 전형장으로 들어갔다.  

융합예술과 교수님들은

굉장히  열린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이었다.

 덕분에  편안하고 자신 있게 말을 했고

 모든 시험을 마쳤다.  

합격여부보다

그 과정을 해냈다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다.


라테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입시하는 동안 불안증상이 정말 많이 줄어있었다.


이따금  수시를 본  일을 떠올리면

어릴 적 좋아했던

말괄량이 삐삐가 모험을 마치고

뒤죽박죽별장으로 돌아왔을 때처럼…

 괜히 신나고 웃음이 났다.

정말이지 그 경험을 해낸 것만도 충분했다.


하지만 합격발표일은  왔고.

관심도 없는 듯했던  남편과 딸이

아침부터  확인을 재촉했다.


'보나 마나 안 됐을 텐데 뭘......

난 보고 온 걸로 만족해^^.'


 딸이 반강제로 나를 잡아끌었다.


"엄마 진짜 확인 안 할 거야?!"


남편이 합세한다.


" 만족은 만족이고,  확인은 해야지.

어렵게 보고 온 시험을..."


남편과 딸을 물리치고; 혼자 방으로 들어간다.  

수험 번호랑 차례로 입력완료,

이제 조회하기만 누르면 되는데..

 갑자기 무서움이 엄습, 도저히 못하겠다..

벌떡 일어나 방안을 우왕좌왕...

심장 쿵쾅대는 소리가 몸밖에서 들리는 기적!


'왜 이래? 합격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건

허언증 말기였나 ㅠ '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덜덜덜 떨면서 으악.  조회 버튼을 누른다.

딸깍!

합격

"앜!!! 이럴 수가!"


믿기지가 않았다...

기쁘면서도 뭔가 비현실적인 기분에 한동안 멍했다.


세상에... 상상이 현실이 되었어..
진짜로 미대에 간다니...

p.s 그런데 라테... 아이들 사이에서
잘 다닐 수 있을까…:))




이전 02화 어머님! 학부형은 못 들어가십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