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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Jan 15. 2022

나의 여자에게, 그리고 너의 여자에게

나희덕, <그녀에게>

M에게...


나희덕 시인의 시선집 <그녀에게>를 읽으면 나는 늘 M, 너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입사동기였고 너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사회생활은 오히려 선배이기도 했다. 신입 직원을 위한 연수원에서 우리는 2인 1실의 같은 방을 쓰며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너의 고요함과 진중한 태도 때문에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너는 나의 쾌활함과 배려심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여자 동기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 왕언니를 자처하며 여자 동기들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다. 그런 내 옆에서 늘 말없이 따르던 너는 항상 진실된 사람이고 예쁜 동생이다.


공기가 섞인 고요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는 너는 총명하고 똑소리 나는 사람이다. 성숙한 눈빛과 가냘픈 손목, 마른 몸을 가진 너는 내가 볼 때 천생 여자였다. 하지만 작고 나약한 체구와 달리 강단을 가진 너를 볼 때면 온실 속에서 자라나는 화초보다는 거친 들판이나 혹한에서도 기어이 품위를 지키며 아름다운 꽃을 피어내는 야생의 사프란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너는 말괄량이 캔디나 수다쟁이 앤 셜리처럼 활달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차가워서 사람들은 너를 오만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너는 그저 일을 할 때 진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일 뿐이다. 월급만 축내며 자리만 지키는 한심한 사람들의 게으른 업무 태도에 대한 경멸을 감출 줄 몰랐을 뿐이다. 물론 나도 네가 지금보다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네가 보였고 알았다. 너는 처녀자리 태생답게 한밤중에 홀로 빛을 발하는 차가운 달처럼 생활 속에서도 너만의 도도한 태도로써 네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란 것을...


그런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더욱 야위어 가고, 잠도 자지 못하고, 평소에는 잘 울지 않던 너의 눈에 눈물이 고이던 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무력감을 너는 알았을까... 너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사소할 수도 있는 실연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내 눈앞에 지금 당장 몰아치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실체적인 재난으로 느껴졌었다는 것을... 너의 생을 뒤흔들고 있는 중대한 사건의 목격자로서 화마와 싸우며 생명을 구해내는 소방대원처럼 너를 구해 줄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그렇다고 너의 고통을 내가 나눠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사막 같은 시간을 네가 그저 견뎌주기만을, 속수무책으로 네 옆에 서 있어야만 하는 나의 무기력함을 깨달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속에서 올라오는 쓴 물을 다시 삼키는 것뿐이었다. 그때 난 네게 <그녀에게>를 건네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의 보잘것없는 위로에 스스로도 한심하긴 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짊어진 고통의 무게를, 홀로 빠진 물의 깊이를, 짐을 내려놓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고 물에 나오고 싶어도 헤엄칠 줄 모르는 너의 커다란 상심과 우울의 질감을 본능적으로 감각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겪었던 사랑의 아픔 때문이라기보다는, 너와의 본래적인 동질감, 같은 여자라는 생물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동질감으로 너를 어느 누구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도리어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해법의 말도 나는 최대한 아끼려 노력했다. 다만,


자신의 나체를 훔쳐본 남성을 화살로 쏘아 죽이는 잔인하고 차가운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도 사랑에 미쳐 결국 강물에 스스로 뛰어든 오필리아로 만들어 버리는 그 사랑... 그 사랑이란 게 언제나 두려움과 통증을 수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한 여성 시인의 언어들이 내게 위로를 주었던 것처럼 너에게도 너만이 인지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건네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그녀의 언어들은 내가 건네는 말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아름다운 위로의 힘이 들어 있었다.


 내가 네게 이 시집을 건넨 것은 너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과 이별의 체험이 사실은 여성이라면 어느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체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네게 조금은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생물학적으로 조금 다른 남자와 여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종임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직결된 진화의 관점에서도, 또 사회적으로도 오랫동안 서로 다르게 다루어졌기에 그게 굳은살처럼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어 대물림 되었다. 그렇기에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조금 다를 때가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행해졌던 사회적 차별은 여자들의 유전자 속에 모종의 연대감 같은 것을 깊게 새겨놓았다는 것을 나는 종종 느끼곤 한다. 여성이 받아온 차별을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는 수많은 정치적, 정책적 함의와 시도가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받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내가 여성으로서 받은 개인적인 차별의 경험과는 별개로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의 어머니를 통해 미토콘드리아에든 유전자에든 담겨 있는 차별의 역사와 고난의 흔적이 지문처럼 남아 있기에 터져 나오는 몸부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데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여성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이렌에 점점 가까워져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렌의 노래는 사람들을 유혹해 치명적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지레 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한 줌의 밀랍으로 귀를 막은 오디세우스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
한편, 중국에는 '누슈'라는 언어가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 온 이 비밀스러운 문자는... 문자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누슈는 여자들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전하는 아름다운 매개체였다. 짧고 함축적인 이 문자는 대체로 5자나 7자로 된 시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지금도 여자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누슈' 같은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언어가 다르고 장르가 달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넘어선 언어 같은 것 말이다.
                                            
                                       - <그녀에게> 작가의 말 중에서 -



나는 서점에서 이 시집의 표지를 본 순간 지구와 달이 서로 끌리듯 자연스럽게 끌렸다. 서로 닮은 두 여인의 눈 맞춤과 맞잡은 손... 내가 또 다른 나에게 내미는 화해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보내는 공감의 몸짓일 수도 있는 이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난다.




내 속에는

반만 피가 도는 목련 한 그루와

잎 끝이 뾰족뾰족한 오엽송,

잎을 잔뜩 오그린 모란 두어 그루,

꽃을 일찍 피워버려

이제 하릴없이 무성해진 라일락,

이런 여자들 몇이 산다

한 뙈기 땅에 마음을 붙이고부터는

그녀들이 뿌리내려

내 영혼의 발목도 잡아주기를,

어디로도 못 가고

바람 소리도 못 들은 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바람의 길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곳에 있었다

어떤 날은 전지가위를 들고

무성해진 가지를 마구 쳐내기도 했다

쳐내면서 내 잎 끝에 내가 찔리고

그런 날 밤에는

내 속의 뿌리들, 그녀들, 몸살을 앓고는 했다

다른 뜰에서 수십 송이 꽃들이

폭죽처럼 터지던 봄날

내 반쪽 옆구리에는 목련 한 송이 간신히 피어났다

오그린 모란잎 사이에 고여 있는

몇 방울 빗물은 쉽게 마르지 않았다

라일락의 이미 흩어진 향기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은 짐짓 모른 체하며 내 곁을 지나갔다


- <그녀에게> 중 '내 속의 여자들' -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네가 실연의 아픔을 온몸과 영혼으로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사실 나는 조금 부러웠다. 나도 한때는 사랑으로 울고 사랑으로 웃던, 수십 송이 꽃들이 폭죽처럼 터지던 봄날이 있었다. 내 안에 어떤 꽃이, 어떤 여자가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내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여자의 방이 서러워 뜬 눈으로 새벽의 푸른빛을 바라보곤 했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내 커다란 행복의 조건이 되었지만 이 목적지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조금 외롭고 우울했어. 그리고 이런 내 상실의 시간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나처럼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된 여자들은 모두 저마다 한 번쯤 홀로 터널을 건너며 속울음을 울어야 했다. 그렇기에 여자들은 서로를 쉬이 알아보며 누슈의 언어로 저마다의 아픔을 매만져 주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살아보니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별로 달라질 것은 없더구나. 다만 서른의 나는 지금보다 더 젊었고, 지금보다 더 많은 가능성의 미래를 앞에 두고 있었을 테지.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낳고 그렇게 생활인으로 적응해 나가면서도 내가 내 속에서 숱하게 싸웠던 것은 서른의 나를 마흔에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구나. 겉으로는 잘 길들여진 발을 갖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걸었다. 하지만 다른 발은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어 길가를 가끔 서성였던 것 같다. 그 두 발의 보폭을 맞추고 목적지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다름 아닌 나이 듦이더라. 그래서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서럽지 않고 아쉽지 않다. 나는 지금의 내 나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피 흘리지 않았는데

되돌아보니

하얀 눈 위로

상처 입은 짐승의

발자국이

나를 따라온다


저 발자국

내 속으로

절뚝거리며 들어와

한 마리 짐승을 키우리


눈 녹으면

그제야

몸 눕힐 양지를

찾아 떠나리


- <그녀에게> 중 ' 사랑'-



그래, 사랑을 하고 난 후 되돌아보니 무엇이 보이던? 사랑은 결국 진정한 나를 만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한 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했고 그 진실이 그 사람에게는 닿았으나 너의 부모님과 하늘에는 닿지 못했다. 너는 지나치게 착한 딸이었기에 바다를 떠나보지도 못한 인어공주였다. 너는 너의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후회로 오랜 시간 자책해 왔음을 나는 안다. 네 마음이 오랫동안 빗 속에서 피를 흘리고 서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 함께 하지 못했음에 나는 늘 미안하다. 내 생활에 매몰되어 나는 나를 돌보기에도 벅찼다. 너그러운 너는 나의 변명을 받아주고 이해해 줄 것이다. 그 사람도 너의 그런 모습을 알아봐 준 것이겠지.


이제는 몸 눕힐 양지를 좀 찾았는지 네게 묻고 싶은 밤이다. 너는 그 양지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어. 그건 정말 잘한 일이다. 있지, 언니가 겪어보니 그 양지는 먼데 있지 않더라. 이별의 미로 속을 헤매던 내가 찾았던 그 양지는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과거의 나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빗 속에서 그녀를 끄집어내어 젖은 그녀의 몸을 닦아주고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면서 나는 비로소 스스로 양지가 되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내 눈은 순해지고 마음 역시 넉넉해지더구나. 사랑의 상처로 독기를 품었더라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고귀한 남자를 나는 알아볼 수 있었어. 마치 견뎌낸 내 인내에 하늘이 상을 준 것처럼 말이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그녀에게> 중 '푸른 밤' -



M, 생각보면 이별도 결국은 사랑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종종 이별이 사랑의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별은 사랑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하나의 풍경이다. 이별로써 사랑은 완성되고 비로소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실연과 상실로 영혼이 한번 크게 감기를 앓고 나면 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눈으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계절이 끝나면 또 다른 계절이 이어지듯 또다시 네게 다가올 사랑을 위해 너는 더욱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별의 길을 걷는 동안 너무 많이 절망하고 너무 많이 울지는 말아다오. 네 몸을 망치고, 네 영혼을 시들게 하기까지 사랑으로 스스로를 망치지는 말아다오. 가련한 인어공주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절망의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일 따위는, 그리고 그런 동화책 따위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을 바로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왕자를 위해 스스로 바다에 빠지는 것은 헌신도 사랑도 아니다. 인어공주가 왜 절망했는지 아니? 그건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부모님과 고향을 등지고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준 대가로 인어공주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가장 절실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사랑을 주고 표현했다면, 그 사람과의 시간 속에서 감정에 충실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졌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네가 할 일은 그저 네 고통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고통을 부정하고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고통이 네게 말을 걸어올 거야. 그러기 전에 네가 먼저 고통에게 다가서라. 네 고통이 너에게 고통을 실컷 쏟아 낼 수 있도록...



어느 굽이 몇 번은 만난 듯도 하다

네가 마음에 지핀 듯

울부짖으며 구르는 밤도 있지만

밝은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너는 무심한 표정으로 와서

쐐기풀을 한 짐 내려놓고 사라진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삶을 짜깁는다


손끝에 맺힌 핏방울이 말라 가는 것을 보면서

네 속의 폭풍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봄볕이 아른거리는 뜰에 쪼그려 앉아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비명 없이도 너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은 것인가


제 죽음에 피어날 꽃처럼, 봄뜰에서.


- <그녀에게> 중 '고통에게 1' -



그렇다. 실연의 그림자 속에 아직 머물고 있는 너는 여전히 봄뜰에 앉아 있는 것이다. 봄의 뜰에 앉아 죽어버린 사랑을 위해 쐐기풀을 엮어 수의를 만들고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상실의 고통은 그런 것이다. 침묵하며 수의를 짜는 동안 네 손끝의 핏방울이 어느덧 말라가노라면 문득 너는 그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기다리기까지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그 사랑을 땅에 묻어라. 그리고 그 자리에 피어난 제비꽃 한송이 꺾어 들고 제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죽어버린 사랑을 애도할 새도 없이 새로운 사랑으로 메뚜기처럼 환승하는 품위없는 사랑이 넘치는 시절에

네 사랑을 오래토록 애도하고 있는 너를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곱디고운 너의 심성에 마음이 늘 시렵다.


나는 이제 기도한다. 부디 네게 다시 봄바람이 불기를, 너의 순해진 눈과 맑아진 영혼으로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어떤 한 남자가 네게 무화과를 들고 나타나기를, 아니 네가 그런 사람이 되어 그 남자에게 다가가기를,

그 모든 가능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지금의 너를 네 스스로 행복하게 해 주기를, 일은 적당히 하기를,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만 엄격하기를,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욱 사랑하기를,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한동안 올리지 않은 기도를 온전히 너를 위해 올려본다. 사랑하는 M, 너를 위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주체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기꺼이 머물 만한 장소에 불과하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름다움이 우연히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알아보는 것뿐이다.(<그녀에게>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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