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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Feb 26. 2022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사랑했던 시들을 찾아 과거로 떠나 보는 시간 여행 1부

나는 왜 시를 읽는가?


제게 시를 읽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제 매거진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신영복 교수님께서 [담론]이라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생동안 가장 먼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첫 번째로 답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이미 발행해 둔 아래의 글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anessdue/10



시를 읽는 두 번째 이유는, '여백'에 있습니다.


시라는 문학 장르는 여백이 풍부한 동양화와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화는 점과 선, 색을 절제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지나치게 섬세하고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림들이 너무 많은 것을 표현했기 때문에, 보는 순간 강렬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도리어 그 프레임에 갇혀 화가의 표현 그 이상으로 우리의 상상력이 뻗어 나가지 못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여기에서 논하려고 하는 것은 꽉 차 있는 그림과 비어 있는 그림 간의 차이점을 밝혀내고 그 지점에서 시와의 유사성을 도출하기 위함이니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 1478년경, 패널에 템페라, 우피치 미술관(피렌체), 보는 순간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감탄하게 되지만 더 이상의 상상의 나래로 나아가지는 못하게 됩니다


반면에 동양화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만 집중하여 붓을 긋고 때로는 검은먹 한 가지로만 대상의 색감을 표현해 냅니다. 이런 절제된 대상 주위에는 여백이 풍부한데 이 여백에서 바로 화가가 의도하는 정서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그 정서를 읽기 위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그림 속 대상과 화가의 의도한 바를 한껏 상상하게 되지요.


화가는 제시하는 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때 감상자는 적극적으로 그림에 몰입하고 개입하게 됩니다. 이러한 개입으로 인해 그림을 매개체로 작가와 감상자 간의 깊은 교감이 발생하게 되지요. 동양화의 여백은 보는 이에 따라 '열린 결말'이 되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보는 이의 적극적인 그림으로의 개입이야말로 그림을 그림 이상으로, 즉 예술로 완성시켜 주는 마지막 요소인 것입니다. 서양화에서 여백이 많이 있는 추상화 또한 동양화의 여백이 주는 정서와 환기를 통한 감상자의 적극성을 이끌어내는 비슷한 기능이 있습니다. 결국 동양화이든 서양화이든 '여백'이 주는 효과는 비슷하고, 또 놀랍기도 하지요.


문봉선, <인왕산 2>, 92 x 180cm 지본 수묵 2016.7, 안개 낀 인왕산의 모습에서 존재로서 홀로 빛나는 실존, 신 앞에서 선 단독자 같은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시를 읽을 때 동양화를 감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충동 - 나만의 시각으로 상상하고 개입하게 되는 적극성- 에 사로잡힙니다. 시는 시가 다 말하지 않은, 고르고 고른, 조탁된 시어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흘러 다니는 무수한 언어들을 독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포착하게 만듭니다. 시인이 그리는 시의 세계가 처음에는 멀고 아득했지만 어느 순간 그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노라면 그의 시 세계에서 놀랍게도 나의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일상에서, 사물에서, 사람에게서 느끼던 모호한 감정과 감상들을 시인들은 자신들만의, 흔하지 않은 언어로, 낯설고 신산하게 정의하고 묘사합니다. 기존의 언어들로서 생경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인들은 과히 언어의 장인이라 할 수 있지요.


시인이 시어 뒤에 감추어 둔(메타시어) 의지, 의도, 상상, 세계관 등을 포착하게 되면 여러분은 아마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야말로 진정 머리에서 가슴으로 떠나는 '가장 먼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읽는 세 번째 이유는, 짧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게으른 독서가라고 한다면, 시 읽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저는 글은 읽고 싶은데 시간과 여건이 부족할 때, 혹은 의지가 조금 부족할 때 시를 읽습니다. 시를 한편 읽으면 소설을 한편 읽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시를 한편 읽으면 어려운 철학책을 읽은 것보다 더 깊은 통찰을 얻게 됩니다. 짧은 시 한 편에서 두꺼운 책 한 권 읽기 이상의 효과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시를 한 편 창작하고 나면 단편 소설 하나를 써낸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길이의 여부와 상관없이 시 한 편은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토록 좋아하는 시를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하나하나 소개하다 보니 문득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왜 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등단 시인도 아니고 정식 작가도 아닌 아주 보통의 독자입니다. 그런 보통 사람의 시 읽기는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거나 시를 좋아하게 되신 분들과 함께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시를 처음 만나다


제가 시를 처음 만난 때는 아마도 초등학교 4~5학년이었던 때로 기억납니다. 그때의 저는 선이 그어진 공책보다 흰색 무지의 스프링 철 된 연습장을 참 좋아했는데 당시의 연습장 앞표지마다 좋은 글귀가 쓰여 있는 디자인이 유행이었던 시절이었지요. 새로 산 스프링 노트에는 파스텔 톤의 사랑스러운 그림과 함께 어떤 사랑 시가 쓰여 있었는데 시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동시조차 읽지 않던 제가 그 시를 읽는 순간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1도 아는 바 없는 꼬맹이 주제에 왜 사랑 시에 꽂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만, <빨간 머리 앤>의 '앤 셜리'처럼 낭만적인 것이라면 대책 없이 좋아하던 성향 때문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입니다.


아직 사랑도 잘 모르는 그 꼬마를 반하게 한 시는 바로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시의 제목부터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나요? 이 낭만적인 제목의 시를 쓴 이는 바로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 1806-1861)입니다. 시의 원문과 번역문을 같이 적어보겠습니다. 번역은 제가 당시에 외웠던 내용으로 최대한 기억해서 적어보았습니다. 요즘 번역된 시어는 원문을 충실하게 따르긴 했지만 30여 년 전 제가 좋아했던 당시의 느낌이 좀 덜한 것 같습니다.



If thou must love me


                                                - Elizabeth Barrett Browning


If thou must love me, let it be for nought

Except for love's sake only. Do not say

"I love her for her smile her look her way

Of speaking gently, for a trick of thought

That falls in well with mine, and certes brought

A sense of ease on such a day"

For these things in themselves, Beloved, may

Be changed, or change for thee, and love, so wrought,

May be unwrought so. Neither love me for

Thine own dear pity's wiping my cheek dry,

A creature might forget to weep, who bore

Thy comfort long, and lose thy love thereby!

But love me for love's sake, that evermore

Thou may'st love on, through love's eternity.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날 사랑해 주세요.

부디 미소 때문에,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내게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 변하거나

당신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짜인 사랑은 그렇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위로를 오래 받았던 사람은

눈물 흘렸던 것을 잊게 되어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날 사랑해 주세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도록




사랑이 무언지도 잘 모르던 어린 나이인데도 저는 이 시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때 나의 장점을 보고 사랑하지 않고 그저 내 존재 자체로 사랑해주길 바라는 시인의 진심 어린 고백이 어린 내 마음에도 깊은 공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이 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로 빌리 조엘의 노래 제목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가 아닐까 합니다. 모든 연인들이 자신의 애인에게 듣고 싶은 가장 진솔한 고백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 몹시 설득된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다는 걸 훗날 알았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난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러브 스토리는 영국 문학사에서 꽤나 유명합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던 러브레터가 따로 책으로 나올 정도이지요.


1806년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엘리자베스 배럿은 14세에 아버지가 첫 시집을 출간해줄 만큼 어릴 때부터 문학적인 기질이 남달랐고, 1844년 출간한 <시>로 영국의 인기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시에 반했던 6살 연하의 무명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그녀에게 열렬한 러브레터를 보내게 됩니다.



I love your verses with all my heart, dear Miss Barrett,—and this is no off-hand complimentary letter that I shall write,—whatever else, no prompt matter-of-course recognition of your genius, and there a graceful and natural end of the thing.


나는 당신의 시를 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친애하는 배럿 양, 그리고 이는 내가 편지를 쓰기 위해 하는 칭찬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의 천재성은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Since the day last week when I first read your poems, I quite laugh to remember how I have been turning and turning again in my mind what I should be able to tell you of their effect upon me, for in the first flush of delight I thought I would this once get out of my habit of purely passive enjoyment, when I do really enjoy, and thoroughly justify my admiration


지난주, 당신의 시를 처음 읽은 이후로 나는 내게 끼친 당신의 영향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이리저리 고민하던 생각이 나서 퍽 웃음이 납니다.  맨 처음 기쁨의 순간에는 순수하게 수동적으로 즐기는 습관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당신의 시를 즐기고 있을 때 당신에 대한 동경을 완전하게 정당화해 버렸습니다.


- 1845년 1월 10일, 로버트 브라우닝의 첫 편지 일부 발췌 -


(좌)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우) 로버트 브라우닝, 이미지 : https://www.thecultureconcept.com



엘리자베스가 로버트의 열정적인 편지에 답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20개월 간 무려 574통의 연서를 주고받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스무 살 무렵부터 희귀병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기도 했고, 재산을 노리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로버트와 깊은 사랑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결국 그와 사랑의 도피행을 결정, 1846년 9월에 결혼을 한 후 그녀가 죽은 1861년까지 15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위의 시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은 엘리자베스가 로버트와 연서를 주고받던 시절에 그를 향해 쓴 시로 자신의 병약한 육신과 6살 연상이라는 점, 집안의 재력, 시인으로서의 유명한 지위 등 이 모든 조건을 보지 말고 오롯이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한 여인의 절절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14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국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이라는 나라에까지 날아온 그녀의 고백은 철부지 어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는 1850년에 출간한 엘리자베스의 시집 <포르투갈어에서 온 소네트>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사랑 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제가 처음 만나게 된 시도 사랑 시였지만, 한동안 시를 잊고 지내다가 다시 시를 펼치게 한 것 역시 사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번에 펼쳐 놓도록 하겠습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첫 편지 원문) https://sites.udel.edu/britlitwiki/elizabethandrobertbrow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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