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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14. 2022

시를 읽게 하는 마법, 짝사랑

사랑했던 시들을 찾아 과거로 떠나 보는 시간 여행 2부

https://brunch.co.kr/@anessdue/260



지난 글에서 소개한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이 제 가슴에 콕 박힌 첫 번째 시였다면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초등학생의 콧물 묻은 용돈으로 산 첫 시집이었습니다. 브라우닝의 시에 반한 저는 아예 그녀의 시집을 사기 위해 자주 가던 동네서점에 들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록 작은 서점이었지만 규모에 비해 시집이나 소설을 꽤 많이 진열했던, 알찬 곳으로 기억이 납니다.


한국과 외국 소설이 칸칸이 꽂혀 있는 칸 사이에서 다른 시인들의 시집은 꽂혀 있었지만 브라우닝의 시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꺼낸 시집이 바로 하이네의 "너는 한송이 꽃과 같느니".


수 십 권의 시집 가운데서 순전히 시집의 제목이 예뻐서 선택한 이 시집은 시 한 편 한 편이 서정적이고 사랑스럽고 어딘지 모를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하이네의 시집은 지금도 친정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텐데 다른 시는 기억이 전혀 나질 않고 시집의 제목이기도 했던 시만 기억이 납니다. 시를 검색해보니 번역이 많이 바뀌었더군요. 그래서 당시에 외웠던 내용을 최대한 더듬어가며 적어보았습니다.



너는 한송이 꽃과 같느니

                                   하인리히 하이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느니

그렇게 곱고 귀엽고 사랑스러워라


너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가득 서러움이 차오르누나


하느님께서 언제까지나 너를

그렇게 밝고 곱고 사랑스럽지켜주시길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뿐


1797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하이네는 시뿐만 아니라 희곡을 쓰기도 하고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였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낭만주의적인 성향의 시를 많이 썼지만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에 영향을 받고 민주주의를 위한 글을 많이 써서 독일 정부의 미움을 받고 결국 프랑스로 망명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허 라흐의 라비>, <서른세 편의 시>, < 하르츠 기행>, <여행 화첩>, <노래의 책>, <신시 집>, <로만체로>, <회상록>등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하이네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저 그의 시를 엮은 시집 한 권 만을 어렸을 때 읽었고 그 이상으로 하이네에 대해 알아보거나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과 슈베르트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에 실린 가곡의 가사가 하이네의 시에서 가져온 것을 보면 하이네는 낭만적인 성향이 가득한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국어 시간에 시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막연하게 좋아했던 시의 세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같은 시들도 참 좋아했지만 특히 좋아했던 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였습니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경상남도 진주 출생인 이형기 시인(1933-2005)은 1950년 『문예(文藝)』지를 통해 16세에 등단했으며 한국 문단에서 천재 문사로 불려 왔다고 합니다. 그는 195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고,『서울신문』 기자, 『대한일보』 정치부장·문화부장, 국제신문 편집국장, 부산산업대 교수, 동국대 국문과 교수, 한국 시인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윤동주 문학상 등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시인은 15세인 1949년 '촉석루 예술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였는데 이때 차석이 제가 무척 좋아하는 박재삼 시인입니다. 두 사람은 친한 동무였다고 합니다.

이형기 시인의 시 역시 <낙화> 외에는 시집을 사서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로 만난 시는 확실히 한계가 있지요.


저를 본격적으로 시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한 것은 바로 '짝사랑'이었습니다. 시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단짝이지요.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의 아픔으로 힘들어할 때 저는 시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 시기만큼 시가 잘 읽히는 때가 없지요. 스펀지처럼 시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중학교 2학년이던 14살, 처음으로 다니게 된 동네의 보습학원에서 만난 수학 선생님을 혼자 짝사랑했습니다. 물론 속으로만요. 그런데 함께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그 수학 선생님이 너무나 싫다며 매일 제게 흉을 보는 바람에 선생님을 좋아하는 표현도 내색도 전혀 하지 못했고, 친구에게 의리를 지킨다고 일부러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싫어한다는 말이 실은 무척 좋아한다는 반어법이었다는 것을요. 친구는 아마 처음엔 자신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 친구가 밸런타인데이에 선생님께 꽃과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깊은 배신감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한편 이해도 가긴 했습니다. 너무 좋아해서 나에게 흉을 보았던 것이로구나. '흉이 흉이 아니었구나'라고 복잡한 사춘기 소녀의 속내를 어느 정도 헤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과 잠깐 잡담을 하다가 어떤 시집을 가장 좋아하시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을 무척 좋아한다던 선생님은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을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고 저는 그 다음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사랑굿>을 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선생님은 결혼을 했고 곧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비록 선생님께 마음 한번 고백하지 못하고 떠나보냈지만 제게는 <사랑굿>이 남았습니다.



사랑굿 55

           김초혜


몸이 있어

병이 있듯

그대 있기에

설움 있네


물을 묶지 못하듯

그때나 이제나

더하지도

덜하지 못한

이 마음

끝끝내 못 묶어

일렁이노니


참말로 사랑 아니거든

서지도

오지도 말고

저만치 뒤에서

잡아나 주어

구김 없이 흐르도록

도와주소서



<사랑굿>은 사랑굿이라는 183개의 시를 실은 연작시집으로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초혜 시인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4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하였습니다. 한국문학상과 한국 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하였고 가정법원의 조정위원으로 활동한 바도 있지요. 그리고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작가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1992년 발간된 <사랑굿>은 백만 권이 팔린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시집이 백만 권이 팔렸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같은 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원태연 시인의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가 150만 부 팔렸는데 생각해보면 1990년대에는 시가 지금보다는 인기 있고 널리 읽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김초혜 시인과 <사랑굿>에 대한 조정래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굿>이 워낙에 인기도 있었지만 시 한 구절 한 구절 너무나 절절하고 가슴에 사무치기에 당시 이미 유부녀였던 김초혜 시인이 혹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출판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래 작가는 이에 대해 딱 잘라 말하더군요. 작가는 상상력으로 글을 쓰는 것이지, 경험한 바로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요. 아내에 대한 신뢰와 긍지가 느껴지는 인터뷰였고, 저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사랑굿>에 쓰인 김초혜 시인의 말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한계를 이룩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소적 힘이다. 그 보편성 위에서 우리의 삶은 긍정되고 완성되며, 개인적으로는 그 보편성이 특수성으로 발전하는 고통이며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인생살이의 모든 인간의 갈등까지도 결국은 사랑의 추구와 그 완성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사랑굿은 곧 인생 굿이고, 굿이라는 말은 우리 삶 자체의 모든 갈등의 행위이기 때문에 연작시의 제목을 <사랑굿>으로 정한 것이다. 예술에는 완성이 없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두 번째의 시집을 묶는다. (김초혜, 시인의 말)



사랑굿 93


화염의

옷을

벗을 수도

벗길 수도 없어

태워지면서

형극의

길로 든다

살들이

타고 남은 재

영혼을

맑게 하고

그대만이

벗길 수 있는

이 옷은

타지도

낡지도 않고

나를 태운다



김초혜의 연작시집 <사랑굿> 제2권을 읽고 난 느낌을 요약하면 이 시집이 그의 시적 성숙과 시인으로서의 자기 세계의 확립을 드러내는... 놀라운 것은 그의 시적 열정이며, 새로운 것은 그의 시적 전진이다. 그의 사랑의 시가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높은 정신적 성취로 나아갔다는 점을... 시적 특색을 화염의 옷과 사랑의 변증법이라 요약할 수 있으리라(사랑굿 2, 해설 중에서)


사랑굿에 실린 183개의 시 하나하나 어찌나 울림이 깊고 묵직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 캐나다에 가져와 여전히 읽고 있는 시집이 되었습니다. 사랑에 울 때마다 이 시집은 오랫동안 그 누구보다도 제게 큰 위안이 되는 소중한 친구였지요.



사랑굿 183


그대와 보낸

세월은

짧기만 한데

그대 기다리는

하루는

길기만 하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얼굴로

돌아와

내게

절을 하고 섰는

그대


인사도 없이

떠나려든

내 손을 잡아주오

그대 손을 놓고

편안히 떠나려오



사랑굿에서 그리워하는 대상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늘 달리 해석되더군요.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는 짝사랑의 대상으로, 사랑을 하고 있을 때에는 내 바로 옆에 있는 연인으로, 때로는 내가 되고자 하는 내 자아상이 될 때도 있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의 의미일 수도 있지요.


<사랑굿>을 펼칠 때면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굿판을 펼치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처럼, 지금 나에게는 간절하게 염원하고 그리워하는 대상이, 이념이, 이상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한 대상이 있는 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되지요.


신내림으로 무아의 지경에 빠지게 되는 무당처럼, 한 번뿐인 인생, 한판 신나게 굿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굿>처럼 열정적이고 깊이 있는 시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리스의 여신 무사이(뮤즈)여, 영감이여, 나도 이제 한판 신명 나게 놀아보고 싶네, 내게로 오라!


30년간 동무가 되어준 3권의 시집, 사랑굿



<평범한 사람의 시 읽기 3에서 다음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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