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ul 08. 2022

잃어버린 서정시를 찾아서

사랑했던 시들을 찾아 과거로 떠나 보는 시간 여행 3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수업 시간표에 '국어' 외에 '문학' 수업이 따로 있었습니다. 지금도 국어와 문학을 따로 구분하여 수업이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좋은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 시간에는 수능을 대비하여 문학 소설과 시를 배웠는데 특히 많이 배우던 것이 바로 시와 시의 해석이었습니다. 지금 얼핏 생각나는 시로는 이상 시인의 '거울',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김춘수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등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교과서나 참고서로 배우던 시들이 좋기는 하였지만 공부로 배우니 왠지 모를 반발심에 취미로는 안 읽히더군요. 입시를 위해 의무감으로 시를 읽으라고 하니 오히려 시와 멀어져 버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요.


더군다나, 한참 감수성 높은 십 대일 때라 묵직한 주제의 시보다는 말랑말랑한 사랑 시를 애송하곤 했지요. 가령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와 정희성 시인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고등학생 시절 내내 참으로 좋아하던 시였습니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인은 1938년생으로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데요. 시인이면서도 영문학자이기도 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에서 바로 이 <즐거운 편지>를 비롯한 몇 편의 시 등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즐거운 편지>를 시인의 고등학생 시절에 지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감수성과 문학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 대의 어린 나이에 사랑이 그리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시는 실제로 시인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썼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리움'을 '골짜기에 퍼붓는 눈'이라고 묘사하고 저 눈이 언젠가는 그치는 것처럼 자신의 그리움 또한 그칠 때가 있으리라는 관조적인 자세입니다. 십 대 답지 않은 의연함과 초월적인 모습 때문에 도리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함이 느껴지고요. 시어는 평범한 단어들인데도 고요히 내리는 눈처럼 기품이 있습니다. 평범한 단어도 어떤 단어를 골라 어떻게 배열하는지에 따라 시의 분위기가 바뀌니 이럴 때 시가 참으로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희성 시인은 황동규 시인보다 7년 뒤인 1945년생에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김수영 문학상과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제목부터 아름답습니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한 그리움'은 나이고 '다른 그리움'은 너입니다. 사람이라는 실체를 그리움이라는 관념으로 바꾼 덕분에 그리움의 행위는 생명을 얻습니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어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봄으로써 더 이상 그리움은 그리움이 아니게 되니 '어느 겨울인들' 우리의 사랑을 춥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을, 그런 운명을 만나기 전까지는 비록 외로울 지라도 희망이 있기에 사랑을 향한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지라도 언젠가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그리움을 위로하는 사람을 만날 그날을 바라보며,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연인을 향해 연서를 바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듯이 존재라는 관념에도 그림자가 있다면 바로 슬픔과 그리움이 아닐까요. 사랑과 기쁨은 존재에 쏟아지는 햇살이라면 슬픔과 그리움은 뒤편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림자를 드리워 본 사람만이, 슬픔과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우고 울어봤던 사람만이 다른 이의 슬픔과 그리움에 공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만드는 사랑은 시인의 말처럼 어느 겨울인들 춥지 않을 것입니다.


수능 대비용으로 배운 시들을 의무감으로 공부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좋아하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재삼 시인입니다. 1933년에 태어난 박재삼 시인은 제1회 영남예술제에서 시 부문으로 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당시 장원은 바로 앞서 소개한 이형기 시인입니다. 박재삼 시인은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다가 3학년에 중퇴했고 그 해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모윤숙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현대문학사와 대한일보 등에서 기자로 재직하였고, 삼성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 지병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16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의 시 몇 편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울음이 타는 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 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겠네.


저것봐, 저것 봐,

네보담 더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겠네.



춘향이 마음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랑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병상에서


내일 어머님이 시골에서 오시는데

한달 보름만에 오시는데

우리 집 뜰에 와서 처음으로 핀

목련의 마지막 꽃잎마저 다 져버렸네요

눈물 흘리듯이 져버렸네요


그러나 시방 한참

산당화가 잘 피어 있고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거든요

다만 목련의 그 맏며느리 같은

탐스러운 꽃잎이 아니고

끼니 없는 사람에겐 더 아프게 보일

밥알로만 피어 있거든요

그러면서 결국은

꽃이 피었으니 신기하거든요


그런데 하나 걱정이 남았어요

이 좋은 봄날,

내 팔다리에서는 꽃이 피기는커녕

저리고 막막한 고혈압만 재발한 걸

어쩔 수 없이 보여 드려야 하거든요



허무의 내력


늘 돈은 조금만 있고

머리맡엔 책만 쌓이고

그 책도 이제는

있으나마나한데

땅 밑에 갈 생각만 하면

나는 빈 것뿐이네


토속적이면서 서정적인 박재삼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김소월 시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더불어 시골 촌부이지만 선량하고 다정한 한 사내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는 봄이 되면 뒷동산에서 나무 한 짐 하면서 부인에게 줄 진달래 꽃도 한아름 꺾을 줄 알고, 한 여름 산딸기를 가득 따다가 길가는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그런 사내입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그런 사내의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그의 시는 분명 향토적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촌스럽거나 예스러울 테지요. 아니면 제가 촌스러운 사람이라 토속적인 시를 좋아하는지도요...




대학생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인은 기형도, 정호승, 이상국 그리고 이화은 시인이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앞에서 2편에 걸쳐 소개한 바 있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anessdue/129


정호승 시인과 이상국 시인의 시집은 따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두 시인의 시 한편씩만 소개하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당시에 거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시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시 "수선화에게"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이 시는 시를 잘 모르는 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 시절 많은 광고 문구에서 이 시를 꽤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강원도 양양 출신의 이상국 시인은 정지용 문학상과 백석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시인은 아닌 듯합니다. 저는 이 시인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20대에 열광적으로 좋아했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자주 펼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국 시인의 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가슴에 저며옵니다. 그의 시집 <집은 아직 따듯하다>에서 한편 꺼내 들어 봅니다.



달이 자꾸 따라와요


                            이상국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 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 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대학교 은사님의 연구실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무척 좋아하셔서 연구실로 자주 부르곤 하셨는데 특히 저를 아껴주셨지요. 은사님은 그림을 좋아하셔서 제게 그림을 가르쳐주셨고, 저는 클래식을 좋아해서 은사님께 좋은 음반을 가끔 선물로 드렸습니다. 은사님의 연구실 벽 한쪽에 수묵화가 그려진 달력이 걸려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달력에 적힌 시 한수를 읽고 난 후 2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도반


                      이화은


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 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욱도 반가워

그 발자욱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욱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 속엔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발자욱 몇 떨기

가슴에 품는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되겠습니까

내 갈 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내 갈 데까지 데려다 주고

그 발자욱 흔적조차 없습니다

모든 걸 주기만 하고

내 곁을 소리없이 떠나가버린

어떤 사랑같아

나 오늘 이 산 속에 앉아

숲처럼 소리 죽여 울고 싶습니다



은사님은 몇 년 전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명예교수로 계시다가 70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지요. 더 오래, 건강하게 사실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황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지방에서 근무 중이라 빈소에 찾아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됩니다. 그래서일까... 이 시를 읽을 때면 늘 교수님의 온화한 미소와 책으로 가득했던 연구실이 떠올려집니다.


이화은 시인은 동국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습니다. 그의 시집 <절정을 복사하다> 에 수록된 이 시는 시인이 자신이 쓴 시 중 가장 착한 시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저는 아직 착한 시를 써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착한 글도 써보지 못한 것 같아요. "아름다운 도반"처럼 순백의 지고지순함이 엿보이는 시를 써보고 싶은데 저라는 사람이 그러질 못하나 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세상에 내보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니까요.



이화은 시인의 '아름다운 도반'을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은 이만 갈무리하려고 합니다. 30대와 40대에 좋아하게 된 시인들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한 두 편 소개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질 않을 것 같아 다음번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이전 11화 시를 읽게 하는 마법, 짝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