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사는 화성인 1

by 김정은

마추픽추 신전에는

내 얼굴이 새겨져 있다

잉카인의 조상들은

나를 기념했지

물고기 가죽을 뒤집어쓰고

뭍으로 나오던 날

잉카인의 조상들은

털옷조차 입지 않은

야만인들이었다

처녀와 어린아이의 펄떡이는 심장을 먹으면

신처럼 강한 전사가 된다고 믿었다

심장 대신 물고기의 붉은 살을 먹는 법을 가르치고

하얀색 뿌리 식물을 키우게 했다

(마니오카는 화성에서 키우던 식물과 비슷했다)

숫자와 셈을 알려주고

별의 길을 지도로 그려주었다

잉카인의 조상들은

나를 현자로 기렸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의 심장을 먹지 않았고

숫자를 셀 줄 알았다

이제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별을 고하자

잉카인의 조상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돌에 새겼다

수 천년이 흐른 어느 날

마추픽추 신전에서

마주한 나의 얼굴이

기묘하다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란 뜻으로 해발 2347미터 고산 지역에 위치한 페루의 옛 도시입니다. '잃어버린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지요. 1911년 예일대 교수이자 고고학자였던 히람 빙엄이 고산지대에 사는 꼬마 목동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도시를 발굴하게 됩니다. 빙엄은 훗날의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실존 모델이기도 합니다.


마추픽추라는 고대 도시가 가진 신비로움 때문에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레이엄 핸콕이 쓴 <신의 지문>이라는 책에 실린 마추픽추 신전의 어떤 조각상 사진을 본 후로 이 곳은 제게 더욱 기묘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핸콕은 이 책에서 페루의 잉카 문명을 비롯한 남미의 올맥, 아즈텍 문명, 더 나아가 이집트 문명에 남아있는 공통점들(저자는 이를 신의 지문이라고 함)을 여러 증거와 함께 매우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핸콕은 마추픽추 조각상의 여러 특징을 보고 페루 신화에 등장하는 창조의 신인 비라코차라고 생각합니다. 비라코차는 잉카인과 달리 얼굴이 하얗고 물고기 가죽을 쓰고 티티카카 호수에 모습을 나타낸 후 인간에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질서와 농사, 수학, 천문학 등을 알려준 신으로 아마도 잉카 초기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가져다 준 새로운 종족의 리더가 아니었나 생각되는데요. 비라코차를 시샘한 사람들에 의해 결국은 다시 물로 돌아갔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슬퍼했다는 기록을 핸콕이 전해 줍니다. 급부상하던 신진 세력을 기득권 세력이 몰아낸 것이 아닐까 해석됩니다.


핸콕이 전해주는 비라코차의 신화는 제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만들었습니다. 화성에 깊게 빠져 있던 시기와 겹쳐 비라코차를 화성에 살던 불멸의 존재라고 가정하고, 어느 날 화성의 멸망을 앞두고 가까운 지구로 피신오게 되었으며, 지구의 바다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지구 생명체에 가깝게 자신을 변화시키던 화성인이 드디어 물 밖으로 나온 후 잉카인 들에게 문명을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을 알려주다가 질투심에 사로잡힌 인간에 의해 쓸쓸히 도망갈 수 밖에 없던 외로운 화성인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지요. 몇천년이 지난 후 그는 우연히 마추픽추 신전에 오르게 되고, 자신의 모습이 생긴 조각상을 보며 묘한 감상에 빠지게 되지요. 이런 내용으로 단편 소설을 구상하다가 도저히 필력이 달려 간단히 시로 한편 정리한 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만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첫날 처음으로 발행했던 시였는데 초기 발행글이라 조회수가 20도 채 되지 않아 쌓인 먼지를 털고 다시 발행 해 봅니다(조회수는 적었지만 라이킷을 해주셨던 분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요즘 시가 잘 써지질 않아 예전 시를 끄집어 낸 것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소설로써도 완성하여 꼭 발행해보고 싶네요. 스스로에게 다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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