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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성 Dec 15. 2023

극치

극치          


검은 코트를 입은 물고기가 늪으로 들어가 더 마취될 것도 없다면서 숨을 참는다. 이것을 주택 담보로 해도 되겠습니까? 그쪽이라면 저쪽 창구로 가셔야 합니다. 물고기는 검은 코트를 지느러미처럼 펄럭이며 저쪽 창구에 앉지만 직원은 당신이 또 만든 모래성이 자꾸 무너져서요. 라고 말하고, 물고기는 극장을 운영해야 하니, 담보로 어떤 것이 좋을지 물어본다. 수익성이 있는 극장입니까. 물고기는 검은 코트를 커튼콜처럼 펼치면서 자, 이 희곡이 작품이 될 것입니다. 하고 다시 코트를 여미고, 직원은 젓가락으로 물고기의 아가미를 툭툭 치며, 여기는 부실해서 투석을 받으셔야 합니다. 얼마나요? 한 삼 천쯤? 이율은 어떻게 됩니까? 수치는 저기서 피 뽑고 오셔야 해요. 물고기는 또 펄럭이며 날아가 피를 뽑고, 옆에 있던 투구게는 파란 피를 가지고 있다. 빈혈이 올 때까지 파란 피를 계속 뽑는 투구게는 많은 걸 포기했을 거다. 피를 반납 중이라니. 갈 때 까지 갔군. 심지어 파란 피라니. 얼마나… 안타까운 눈으로 물고기는 저울 위에 올라선다. 이거, 허파랑 간 쪽이 빠지셨네요. 대출 심사에 부적격입니다. 물고기는 검은 코트에서 토끼 간을 꺼내 이게 저희 조상들에게 받은 유산인데, 이걸로는 좀 어려울까요. 그건 희곡 작품에서 소품으로 쓰던 가짜 아닙니까. 물고기는 민망해서 눈을 끔뻑이다가,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제 돌아가야 할까. 검은 코트 안쪽을 매만져도 남겨진 극단원들이 손에 밟힌다. 기필코 담보를 맡겨 얻어 내리라. 다짐한다. 결국 투구게가 쓰러지고 윙윙 어항 달린 구급차에서 구급대원들이 와장창 쏟아졌다. 대원들은 투구게의 투구를 벗기지 못하고 심장압박을 했지만, 더 이상 피가 없어요. 결국 투구게는 다시 파란 피를 대출 받아야 합니다. 코마 상태의 투구게에 집게로 지장을 찍고 눈에 아른 거리는 어른 투구게, 제가 죽으면 누가 거두나요. 그렇게 거둬드린 극단원들이 많은 물고기는 가만히 있다가 일어나 집게손을 꼭 잡으며 제가 구한 투구게가 많습니다. 하며 검은 코트를 펼치더니 엉엉, 독재국가의 시민들처럼 우는 투구게들, 집게를 흔들며 직원들에게 각광을 받으니, 직원이 달려와 아이고, 파란 피가 있으시면 얘기하시죠. 이리로… 라며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간다. 코트에선 검은 비늘이 떨어지고, 그걸 동전처럼 대기표를 쥐던 고객들이 줍고, 투구게는 집주소를 적으며 피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통장에 입금해 달라고 하고, 물고기는 도마에 오르고 직원이 ATM기를 냉동고처럼 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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