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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성 Dec 15. 2023

자기신화


O는 방문 앞에서 책등처럼 서 있다가

아무 말도 펼치지 못하고 뒷모습을 접었다. 

집도 모르는 방처럼 박혀 있는 O의 애인은 

천사들만 걸리는 거식증을 앓고 있다. 

O의 애인은 태몽을 자주 꾸고 그만큼 몸무게를 상실해서

세상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자신의 반쪽이 태어나고 있다고

고열처럼 믿고 있었다. 소독약이 흐르는 강에 

온몸을 밀어 넣었으나 깨끗해지기만 하였고

치료라는 것은 항상 신비로운 학대 같은 것.

음식을 밀어 넣는 것이 그러했고

약을 주워 먹는 것이 그러했다. 

한 눈에 두 개의 겹쳐진 눈동자를 가진 O는

애인이 두 명으로 가끔 보이기도 했다.

한 애인은 O의 입에 생화를 깊게 넣어두고 물을 주었고

O는 입을 열어 꽃이 핀 생화를 보여주었다. 

다른 애인에게 최종적인 목소리를 결정해준 O는

선글라스를 쓰고 밖으로 나가 

커튼으로 쓸 유령 몇 개를 사왔다. 입을 열 때마다

꽃향기가 돌았고 O는 집에 돌아와

깨끗하게 죽은 벌새를 뱉어내는 애인을 씻기고 바닥을 닦았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방식으로 

유령이 유령을 낳을 순 없는 걸까. 

O는 덤덤히 유령의 목을 커튼 봉에 매달고, 흔들며

반투명한 유령의 신체를 통과하는 꿈의 색채를 생각했다.

입을 열면 찾아오는 하얀 벌새를 애인은 언제 먹었던 것일까.

곰곰이, O는 생각하여 보았지만 O의 애인들은 말이 없고

그건 O가 바라보는 세계의 입장과의 입장 차 

O는 애인의 반쪽을 데려와야 한다는 것과

밀린 공과금들에 책임이 있었다.

애인을 천사로 만든 것을 서로가 아무도 몰랐으니까. 

O는 입에서 생화를 꺼내 소독약에 씻기고 말렸다. 

O는 뒷모습을 접어 애인들 사이에 누웠고 

애인들은 O의 뒷모습을 가름줄로 갈라두었지만 

그 페이지는 O가 평생 볼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벌새만한 천사들이 유령을 두드리며 천사를 찾았다.

애인들은 입을 벌려 벌새를 돌려주었고 

O는 한 눈의 두 눈동자를 완전히 겹쳤다.

누군가 책등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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