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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바라보고 살아갔던 날

한 순간도 하늘을 볼 수가 없었던

28세의 나이에 신입 사원으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나와 같은 부서에 입사한 동기가 10명이 넘었다. 그때는 대한민국의 제조업 수출이 호황이었다. 물건을 만들기가 무섭게 판매처로 넘어갔고, 없어서 못 파는 시절이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항상 12시가 넘어서 퇴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신입사원이었고 봉급은 너무 적었다. 업무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심했다. 신입 사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업을 맡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선배들의 질책과 교육을 받으며 매일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10명이 훌쩍 넘었던 동기들이 1년이 좀 넘는 시점에는 다 사라지고 나와 두 명의 동기만 남게 되었다.


나와 페어로 일하던 선배는 14년 차 차장이었다. 그는 술고래였다. 매일 저녁 술약속을 잡고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댔다. 갑자기 휴가를 내고 출근을 안 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아내와의 관계도 파국에 이르렀는지, 가끔은 아내분이 나에게 전화해서 그분의 행방을 물을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에서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길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매일을 인내하며 그냥 버틸 수밖에 없었다. 큰 즐거움이나 여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느 것도 나에게 위로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지냈던 것 같다.


주말에도 집에 대기하다가 공장에서 전화를 받거나, 해외 법인에서 밤늦게 연락을 받았다. 휴가 때도 전화를 받았고, 펑크가 났을 때면 여지없이 사무실에 나와서 일처리를 해야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펑크를 내고 펑크를 때우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지내니 주변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름 나한테 고생이 많다며 위로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같이 일을 하며 알게 된 선배들은 좋은 사람이 절반, 이상한 사람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50%의 확률이 그래도 어딘지. 나는 좋은 관계로 남게 된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며, 힘들었던 시절을 나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동기들과 가끔씩 모여서 회포를 풀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모여서 우리를 괴롭히는 선배의 험담을 나누면 뭔가 속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평생 함께 갈 것만 같았다. 세 명의 동기중 한 명은 독일에 한 명은 영국에, 지금 나는 미국에 있다. 우리의 갈 길은 어디서부터 인지 갈려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세상은 나에게 차가웠다. 그리고 낯설었다. 그것은 큰 모험이었다. 나는 세상을 몰랐고, 일부를 보고 전체를 가늠해야만 했다. 젊은 나에게 그런 식견은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감당해야 했고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회는 젊은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회사에서 스폰서 해주는 MBA가 임원들의 자녀에게 주는 혜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아직 많다고 느끼게 되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세상은 그와 같았다.


젊은 시간, 그때는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누구도 나에게 심지를 박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나는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불행했지만,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느 야심한 날 사무실에 남아 있었을 때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30분간 침묵 안에 있었다.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나는 행복할 수 없다고 체념하며 살았던 시간이었다. 화려한 시청 근처의 건물에서 정장을 입고 일했지만, 나는 초라하게 살았다.


행복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으면 나는 조금이라도 내 길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된다. 큰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물러설 때가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운명이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배우고 있다. 신입사원처럼, 그리고 신입생처럼. 다시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배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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