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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들과 살아가기

고난과 역경 그리고 모험과 변화

2017년에 2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65세의 이른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5살이 된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둘 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 두 사건으로 인해 나는 많은 부분에서 삶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했다.


아들은 장애 진단을 받게 되어 우리 가족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길을 걷게 되었다. 발달 장애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나서 이것은 치료하면 되는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발달 장애로 아픔을 겪고 있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평생직장이라고 여겼던 직장을 떠나고,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 살아갈 환경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장애인에 대해 눈에 보이는 차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반면 미국은 눈에 보이는 차별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만 있었다. 아들이 살아가기에는 그래도 다양성이 존중받는 곳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발달 장애가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다는 주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발달 장애를 공부하면서 읽게 된 어느 책의 첫 페이지에 이런 우화가 있었다. 모처럼 가족여행을 위해 런던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탔는데, 이륙 직전에 기장이 이런 안내를 한다는 것이다. "손님 여러분, 우리는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런던이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발달 장애 진단으로 인해 인생의 항로가 바뀌게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런던이면 어떻고 암스테르담이면 어떤가? 오히려 암스테르담은 튤립과 풍차로 더 아름다운 도시이고, 그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아주 멋진 일이다.


아들의 발달장애로 인해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살게 되었지만, 한국만큼 미국도 아름답다. 한국에서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과 집을 왕복하며 인사 고과와 승진 시기를 바라보는 생활이었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보다 가족 중심적이고 좀 더 여유롭다. 때로는 좀 더 풍요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사람이 그립기도 하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내 아들에게만큼은 좀 더 관대한 사회라고 느낀다.


한국의 교육은 어느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서 성과가 엇갈리지만, 미국의 교육은 한 사람이 지니게 된 성품과 인간성, 자기를 둘러싼 공동체와 어떻게 어울리고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중요시한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갈 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발달 장애아인 아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 다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고, 자기 밥벌이를 하며 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삶을 기대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들을 데리고 발달 장애아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클라이밍을 하고 왔다. 아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저 아들의 어린 시절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런 행복한 기억들이 모여서 인생에 어려움이 왔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아직 우리가 살아갈 날들이 더 많고, 우리는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즐겁게. 그것 하나면 모든 것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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