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아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아들이 발달 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4살 무렵이었다.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면담을 요청하셨고,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길 권하셨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이는 상동행동이 다른 아이들과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소개해 주신 구청의 전문가를 만나 발달장애라는 소견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에 대한 조그마한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으면 쉽게 나을 수 있는 증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발달장애 클리닉이나 테라피를 알아보고 등록했고,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발달장애는 현대의 의학으로 극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돌이켜보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 원인 역시 어떤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될 수 없었다. 그저 주변에 어떤 테라피가 좋고 어느 센터가 더 아이들에게 좋은지 정보를 단편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인생의 로드맵에 아들의 발달장애는 애초에 기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갈팡질팡이었다.
아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이상 행동을 보였다. 키즈카페에서 놀다가 다른 아이를 가해하는 일도 있었고, 무엇인가가 기대에 어긋나면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부수어 버리기도 했다. 다른 부모들은 나에게 쌍욕을 했지만, 나와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일상은 아이를 데리고 조금이라도 낫게 한다는 센터를 찾아다니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스피치, 감각 추구, 체육, 미술, 음악 치료 등 안 해본 테라피는 없었다. 한 번은 승마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을 태우러 다니기도 했다. 다른 학부모님의 블로그를 참고하면서 놀이터에 데려가서 하루종일 그네와 미끄럼틀을 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하루아침에 증상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회사 일은 너무 바빴고, 일을 하다 보면 아들과 아내의 존재조차 잊고 살아가는 때도 많이 있었다. 가족보다는 일 중심의 우리나라 기업 문화는 아내 혼자서 발달 장애 아들을 돌봐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들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아내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학교를 마치면 서울의 모든 지역에 걸쳐 있는 테라피를 돌았다. 어느 책에서는 아이들의 운동량을 늘리고 뛰고 하고 걷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매일 4~5km 되는 거리를 아들과 아내가 걸어서 이동하고 테라피를 받고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코스를 반복했다.
지금은 미국에서 다양한 테라피를 받고 있지만, 사실 한국과 비교해서 확실히 무조건 낫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한국은 발달장애아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가 모두 학교 밖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경제적인 여건이나 관심에 따라서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가 가변적인 반면에, 미국은 학교 시스템이 발달장애 아이들의 상태를 점검하도록 되어 있고, 그 진단 결과에 따라 개별적인 교육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학교가 많은 부분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발달장애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받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의료 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 비하면 경제적인 여건과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가 더 넓은 편이다. 서비스 이외에도 미국에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해 편견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데리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키즈 카페에 데려가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이곳은 아이의 실수에 좀 더 관대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이는 아기 때부터 음악에 많은 흥미를 보였고, 7살이 되던 해부터 첼로를 시작했다. 아무도 발달장애아를 대상으로 레슨을 해주지 않아서 어려움 끝에 한 사회복지관에서 음악 치료를 담당하시던 한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1:1 레슨을 계속하였고, 작년에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연말 콘서트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도 계속 쌓이면, 훗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믿으며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첼로 연습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오늘은 온 가족이 JCC에 가서 운동을 했다. 아들은 수영을, 엄마는 조깅을, 나는 라켓볼을 쳤다. 아들은 수영을 너무나 좋아한다. 이제는 25m 풀 왕복을 혼자서도 곧잘 한다. 그 과정을 너무나 즐기는 모습을 본다. 이렇게 보내는 하루가 쌓여서 또 새로운 날을 불러올 것이다. 발달 장애는 없애거나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끌어안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연습해 나가면 그래도 언젠가 어떤 방식이든 변화가 올 거라는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많은 날이 지나서 지금을 돌이켜 보면 알게 될지 않을까? 지금이 찬란히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