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았다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안되었을 무렵에는 정신세계 속의 모든 세팅이 한국 위주로 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일어났던 일을 업데이트받기 위해 한국 뉴스를 시청하거나, 아니면 야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기도 했고, 예전에 같이 업무를 했던 직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돌리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앞으로 가족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막막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2년간 미국에 거주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 안에서만 보냈기에 이 나라가 어떤 곳인지 체험할 시간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곳은 한마디로 나에게 외로웠다. 퇴직한 이후에 예전 직장 동료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업무로 엮이는 일이 없다 보니 내가 예전 동료들에게 더 이상 해줄 것도 없고 도와줄 일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멀어져 갔다.
3개월이 지난 시점에 한 후배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미국으로 주재 발령이 나서 법인으로 파견을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그 후배와는 퇴직하기 두어 달 전에 점심을 먹은 일이 마지막이었는데, 이렇게 연락을 준다는 것 자체가 참 고마웠다. 미국에 와서 3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외로움과 어느 정도 친숙하게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런 상황에 옛날에 같이 지냈던 때를 기억해 준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 후배와 점심 약속을 잡고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 적응을 잘할 수 있는지 몇 가지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후배로부터 다른 후배들도 회사를 퇴직하고 미국에 지내는 다른 후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후에 단톡방을 만들었고, 그 후배들을 모두 한 번에 초대해 버렸다.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온라인으로 한 곳에 모여 생존신고를 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사뭇 들었다.
오늘은 이곳에 거주하는 또 다른 인연을 찾게 되었다. 같은 소대 내무반에서 군대 생활을 하던 동기였다. 그 녀석은 착한 친구였는데, 매우 특이한 주특기를 가진 녀석이었다. 부대 내의 테니스 장을 관리하고 장성들의 테니스 코치를 하는 역할을 하는 일명 '테니스 병'이었다. 정말 편한 꿀보직 일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녀석의 선임이었던 선임 테니스병들은 사제에서 건달 일을 하다가 입대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친구는 나름 편한 보직을 찾기 위해 그 보직을 찾아서 들어왔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 생활을 고달픈 생활이었다. 짬밥이 차면서 이 친구와 친해졌고, 제대를 하고 나서도 오랜 기간 연락하며 같이 교회를 다녔다. 이 친구의 아버지는 화장품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경기가 나름 괜찮다고 했다.
그 이후 한참 동안 한국에 K 뷰티의 열풍이 불면서, 이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경영수업을 받았다. 나는 속으로 무슨 중소기업을 물려받는데 유학까지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의 반응은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나에게 대뜸 우리 회사의 부회장이 어떻게 승계 준비를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한편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그때까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그 회사가 시가 총액 2조 원가량 하는 1위 화장품 OEM이라는 것을, 그것을 아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이게 맞는 이야기인지 연락을 해보았지만 그때부터 이 친구는 연락두절이었다.
그러던 중, 오늘 이 친구와 연락이 닿게 되었다. 이 친구도 미국에 있고 지역도 나와 같은 곳에 있으니 한번 만나기로 했다. 역시 그의 스케줄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내일은 다시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럼 한국에 가기 전 시간이 내일 밖에 없으니 잠깐이라도 만나자고. 이 친구가 예전에 나와 같이 같은 소대 막사에서 지내던 그 친구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국 땅에서 정말 몇 안 되는 내 인연이기에 소중한 마음으로 다시 만나고자 한다. 누구든, 이곳에서는 다시 만나게 되면 너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