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위기 - 비행기 잔해, 검은 해변
뽀가 쓰는 3월 7일 Diary
날짜를 세어보니 여행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시간 참 빠르다.
어제부터 내린 눈이 아직 그치지 않았다. 밖에 있는 세면대에서 란이랑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숙소에 들리는 바람소리와 스산한 공기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우리 바로 뒤에 거울도 있어서 꼭 누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밖은 눈바람이 휘날리고 있고, 일부 지역은 아예 고립 상태라서 오늘 여행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 안개인지... 눈인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라? 조금 더 가니, 눈이 그치고, 햇빛이 비추면서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다. 여기는 정말 계절이 순식간에 변하는 이상한 나라다.
오늘 첫 장소는 비행기 잔해가 있는 곳. 1시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해서 사람들이 가기 힘들어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란이랑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듯 그 길을 왕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산책을 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미술을 하는 란이가 사진까지 배우니,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사진을 배웠고, 나는 평소에도 못 찍는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왔는데, 지금에서야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니... 여행 오기 전부터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 정말 잘 찍어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란아, 내가 빨리 열심히 사진 배워서 나도 예쁘게 찍어줄게.'
이야기하면서 걷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그곳에는 비행기 반쪽이 잘린 듯한 잔해가 검은 모래 위에 놓여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 위에 홀로 놓인 비행기 잔해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외롭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왜 반쪽이 되어서 놓여 있는 걸까.'
비행기 잔해를 보고 나서 폭포를 보러 갔다. 사실... 이전에 본 굴포스의 위엄이 너무 커서 이런 작은 폭포들은 감흥이 없다. 아이슬란드는 폭포가 너무 많다. 폭포는 이제 그만 봐도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슬란드에 여행 오는 다른 분들은 굴포스를 제일 마지막으로 보기를...
점심을 먹고, 검은 해변이 보이는 절벽을 찾아갔다.
그 위에서 바라본 노을과 검은 해변이 한눈에 보이고, 그 뒤로 눈 쌓인 산들이 보이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이슬란드는 계속 대자연에 감탄하게 되는 곳들이 너무 많다. 이쯤 되면 예쁜 곳을 많이 봤다 싶은데도 감탄의 연속이다. 우리는 절벽 끝에서 사진을 찍으며, 눈으로 보는 이 풍경들이 그대로 사진에 담기길 바랐다. (절벽 끝은 무서워서 안전거리를 두고 찍었다. 나중에 들으니 바람에 날려 죽을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다....)
밤에 숙소 바로 앞에서 오로라가 보였다! 육안으로는 희미하게 보였지만, 오로라를 한번 보고 난 뒤라 저 희미한 빛이 오로라라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번에 본 오로라가 기억에 너무 생생해서 이렇게 옅은 오로라는 감흥이 없다. 그렇게 보고 싶던 오로라가 보이는데도 한 번 봤다고 이렇게 별 느낌이 없다니....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제일 좋은 건 나중에 봐야 한다.
란이 쓰는 3월 7일 Diary
오전 10시 50분
우리는 지금 고립됐다........
는 msg를 첨가한 설정이고, 사실은 반고립? 움직일 수는 있으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어제부터 내린 폭설이 지금까지 내리고 있어서 비교적 눈이 덜 내린다는 레이캬비크 쪽으로 눈바람을 피해 도망을 가는 중이다.
한국도 폭설이 내릴 때가 있기에 눈은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정말 이런 눈바람은 난생처음이다. 차가 흔들리고 문을 못 열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바람에 휘날린 눈은 얼굴을 거세게 친다.
사실은 너무나 춥고 다니기 힘들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미친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의 발길을 멈출 수 없도록.
그렇게 지금 내 앞에는 난생처음 보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온 세상이 새하얗다. 하늘과 바닥의 경계가 없이 하얗다.
하얗고 하얀 걸 떠나서, 가보지 않았지만 ‘구름 위란 이런 광경일까?’ 할 정도로 새하얗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 위에 혼자 떨어진 느낌. 이 도화지에 어떤 걸 그려볼지 고민해봐야겠다.
30분을 달려왔다. 하늘이 맑다... 참 신기한 나라다.
오후 1시 50분
비행기 잔해를 보기 위해 주차장에서 1시간 거리의 비포장도로를 걸어갔다 왔다.
가는 동안 뽀와 수다를 떨면서 갔는데, 역시 좋은 풍경과 산책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기 좋은 순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서 친한 사람과는 그때그때 이야기해서 풀어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한동안 섭섭했던 감정을 꾸밈없이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이번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우리 생에 아주 중요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 중요한 여행에 둘이 예쁜 사진을 담고 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사진을 배워왔다. 물론 배우면서 재미를 느껴 나의 수많은 취미 중에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매일매일 사진 편집을 하면서 내가 뽀의 인생 샷을 많이 남겨준 것이 보이기에 뿌듯했다. 하지만 나도 여자 사람인지라 나의 모습도 예쁘게 담고 싶었다. 근데 뽀는 사진을 배워오지 않았기에 삭제되는 나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 부분이 채워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속상했다.
사실 오기 전에 ‘왜 너 혼자 사진 배워?? 유럽 가면 사진 때문에 속상하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설마 그런 걸로 속상해하겠어 라는 생각에 "대만에 갔을 때 잘 찍어줬었어 괜찮을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고 나니 그 부분이 속상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 욕심은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만 때보다 사진을 보는 눈이 높아져 있었고, 뽀는 아니기에 그 갭 차이를 메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머리로는 이 부분을 이해해줘야 해, 가르쳐줘서 잘 찍어달라고 해야지 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나도 모르게 속상해지고 있었다. 이 감정을 안고 있으면 서로에게 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기에 이야기를 한 후 나도 예쁘게 담아달라고 했다.
뽀도 그 부분이 조금 부담되고, 고민됐던 부분이었는지 "네가 너무 늘어서 그래~!" 하면서 본인도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즐겁게 담으면 언제나 예쁜 사진이 나오겠지 생각한다.
뽀는 엄청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뽀를 믿는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뽀와 계속 즐겁게 추억을 담고 싶고, 뽀의 인생 샷을 계속 찍어 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