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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22. 2021

에필로그

우울은 늪이다. 한번 빠지가라앉기 시작한다. 빠져나오려 몸무림 쳐도 가라앉는다. 슬픔과 무기력에 잠식된 채 계속해서 더 깊게  빠져 들어간다.


나에게 우울이란 숙명이었다. 기질인지, 아빠가 자살한 여파인지, 둘 다 인지 원인은 불분명하나 숙명임은 분명해 보였다. 몇 차례 우울증이 반복하는 것을 보며 스스로 평생 우울증을 겪을 운명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의 일평생이 우울한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행복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배를 굶주릴 때 남은 음식을 싸 준 이가 있었으며, 풀지 않은 문제집을 건네 준 이가 있었으며, 대신해서 돈을 내준 친구가 있었으며, 투닥거리고 서로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그 안에 사랑을 품고 있는 가족이 있었다.


언제까지나 내 속에 우울을 숨기며 고통 속에만 빠져있고 싶지 않았다. 자기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근본적인 상처와 상처를 달래 주던 고마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같은 슬픔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글을 쓰고 나서야, 가족들과 지금껏 금기였던 아빠의 가정 폭력과 자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가난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셋째 딸의 우울증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셋째 딸이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 것을 처음 안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엄마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의 이기적인 고백으로 엄마에게 새로운 상처를 만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엄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통곡을 한 후, 나의 평안과 행복을 간절히 기도했다. 어둠을 보기보다는 어둠을 밝히는 빛을 바라보자고 이야기해주었다. 아프기도 했지만 행복하기도 했듯이, 상처를 품은 우리 모두 앞으로도 슬픔과 기쁨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세상을 사는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늪은 물 웅덩이로 변할 수 있었다. 약물로 진흙같이 뭉쳐진 불안을 덜어내고 소소하고 긍정적인 감정들내 안에 채웠다. 항상 늪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늪은 흙탕물로 변했.


여전히 흙탕물이라 생각되지만 흙탕물에서는 헤엄칠 수도, 언젠가는 내 발로 걸어 나갈 수도 있다. 더 이상 이곳이 늪이 아니라 물이라는 것만 인지하면 된다.


숙명과 운명을 떠안고 살 줄 알았던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우울감에 허우적 대던 내가 요즘은 우울감보다는 수영장 물속에 빠져 살고 있. 나란 인간이 어딘가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자기혐오가 아닌 내 몸으로 살아있는 온도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수영장 물이라 참 다행이다.


나도, 당신도. 마음 아픈 어느 누구도.

아무 잘못도 없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금껏 많이 힘들었겠다고 위로하고 싶. 당신의 아픔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당신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으니, 조금만 같이 기다려보자하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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