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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22. 2021

열매가 되어

숨조차 쉴 수 없는 곳까지
가 본 적 없는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시는
차고 깨끗한 비밀의 물이 어느 근원에서 오는지.

또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던진

작고 둥근 동전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데이비트 화이트 <슬픔의 우물> 中

행복에 겨운 삶은 아니었지만, 항상 불행한 삶도 아니었다. 뛰어난 인생을 산 것도 아니지만, 뛰어난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셋째 딸은 잘못 뽑은 뽑기와 같았다. 그래서 일평생 나는 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사랑받고 싶었다. 짐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살가운 존재가 고, 엄마에게는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집안에는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했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때 반에서 5등을 했다. 지쳐있던 엄마의 주름들이 웃음으로 활짝 펴졌다. 그 모습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울적한 삶 속에 이 생겼다.


사교육은커녕 문제집 살 돈도 부족했다. 공부를 해도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갈 것 같았다. 그래도 공부했다.  40분 거리 학교를 걸어 다니며 저금하고, 학교 매점에 가서는 빵 한 번 사 먹지 않고 용돈을 아껴 저축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쓸 담임 선생님이 "왜 외고를 지원하지 않느냐" 물었다. 학원과 엄마의 교육열로 정보를 수집하던 2000년대. 외고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았다. 뒤늦게 알았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빨리 알아도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다닐 수 없다는 건 같았 테니까. 외고 진학을 꿈꿨다 좌절하기 보다는, 스스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항상 전교 10등 내를 유지했지만 대학 갈 돈이 없었다. 마침 지방에 신설된 이공계 특성화 대학교에서 4년 전액 장학금과 어학연수 지원금을 준다 말에 지원했다. 덕분에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을 합격한 순간도, 다닐 때도, 항상 더 좋은 학교를 선택하지 못한 아쉬움 가득했다.


정해진 앞만 보고 달리느라 넓은 길을 보지 못했다. 진로는 사기업 취업과 공대 대학원 진학 두 가지밖에 몰랐. 졸업 즈음 친구들이 MEET, PEET, 변리사, 공무원 등을 준비해서 합격하는 것을 보고서야 다양한 방법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항상 좁은 시야, 선택지로 살아가 나 자신  아쉬웠다.


사람들은 나에게 집안의 희망이라고 했다. 스스로도 내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좋은 곳에 취직하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쉴 수 없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타지 생활에 굶주릴 때도, 우울함과  진로에 대한 번뇌로 휩싸일 때도. 미래를 위한 고통이라 생각하며 버텼다. 마침내 기업 합격했을 땐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피어난 새싹을 본 것만 같았다.


환상의 아름다움 만큼 추락의 아픔은 컸다. 군대는커녕 선배조차 겪어본 적이 없어 회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더 힘들었다. 나이 든 남성을 보면 주눅 들고 무서웠다. 목소리를 죽이고 상사 대신 손발만 바삐 움직이며 부품처럼 살아야 했다. '지방대 출신'과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벽과 천장을 느끼며 좌절했다. 그동안 서서히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네모는 동그라미가 되어야 굴러간다. 그런데 네모는 동그라미가 되어 행복할까?'라고 적힌 일기가 '난 무가치하. 살 의미가 없다'로 바뀌기까지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퇴사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기에, 나란 사람은 이 회사를 나가는 순간 보잘것없는 거렁뱅이일 거라는 생각으로 울기만 했다.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고 자살시도까지 하면서 병원에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제야 불행 뒤에는 희망이, 희망 뒤에는 절망이, 절망 뒤에는 회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멈추면 멈추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불운을 슬퍼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인정하려고 한다. 빛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숨 막히는 현실 뒤에 다가올 희망과 회복을 기다려 본다.


셋째 딸이라는 원죄. 낮은 자존감. 자신의 가치 증명을 위한 발악. 탄생과 죽음에 대한 죄책감. 가난으로 인한 무지. 돈 때문에 포기했던 수많은 것들. 삶을 포기하려 했던 시도들. 나을 듯 낫지 않고 재발하는 우울증. 자기 연민. 자기혐오.


 모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슬픔들은 ''라는 사람의 고유한 분위기와 생각을 만들었다. 고통이 있다고 해서 평생 그 고통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니까 이제는 아픔들을 그저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어디서 출발했을지는 모르지 나에게 오고 있을 빛을 기다리며. 조금만 더 기다리며. 오늘도 나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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