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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현진 Oct 11. 2022

세상에 나쁜 욕구란 없다

 


아빠 육아에 대한 강의를 하면 항상 청중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지금 여러분들의 욕구는 무엇이 있나요?”


 그럼 다들 당황스러워한다. 욕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 때문이다. 욕구나 욕망이라는 단어는 나쁜 말처럼 들린다는 청중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거나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욕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욕구의 반대는 ‘무기력’이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으니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부터 성공, 인정 등의 욕구도 없다면 세상은 그대로 멈춰버릴 것이다. 


 나 또한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도 특정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독서를 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욕구라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느낌이 들거나 등한시했다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인식하자.


 세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는 기저귀가 마를 날이 없었다. 쓰레기통에는 기저귀가 항상 가득했고 수시로 비우기에 바빴다. 한밤중에도 깨서 우는 아이를 아내와 교대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서 재웠다. 아이를 안고 거실을 걸으면서 창문을 보았다. 새벽의 길거리는 고요했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에 반해 지금의 내 모습은 수면 부족으로 피곤에 찌들어 있었고 우울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를 안고 거실을 빙빙 걸어 다녔다. ‘이제는 자고 있겠지’하며 아이를 쳐다보면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일까? 다양한 부분이 있겠지만 가장 힘든 것은 욕구의 좌절 아닐까? 예를 들어서 기본적인 수면 욕구,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 성취의 욕구 등등 이런 자신에 대한 욕구가 계속 충족되지 못하는 것이다. 욕구의 좌절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육아로 인한 욕구의 좌절

 육아 때문에 발생하는 욕구의 좌절이 있다. 결혼 전까지만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 퇴근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주말이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저녁이 되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먹는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큰 욕구부터 작은 욕구까지 무시당하게 된다. 퇴근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이면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TV도 내가 보고 싶은 걸 제대로 보질 못한다. 저녁이 되면 아무리 졸려도 아내와 교대로 우는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달래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가끔 자신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만 아슬아슬하게 채워지고 있을 뿐 기존의 ‘나 자신’ 없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 대신 ‘아빠’ 또는 '엄마'만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육아를 하다 보면 욕구의 좌절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욕구의 좌절 원인 두 번째는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오빠, 출출하지 않아? 뭐 좀 만들어 줄까?”

 “아니야. 괜찮아.”

 “그럼 사과 먹을래?

 “괜찮아. 안 먹어도 돼.”

 “진짜 안 먹을 거야?”

 “응. 괜찮아.”

 “이번에 꿀 사과던데. 먹어봐.”

 “음… 그럴까?”


 아내가 먹을 것을 권유하면 이상하게도 꼭 거절부터 했다. 뇌에서 생각하기 전에 자동으로 안 먹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세 번 이상 물어보면 그때 먹는다고 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럴까? 먹고 싶은데도 왜 한 번에 먹는다고 안 그럴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의 욕구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내 안에는 상대방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보니 내 욕구를 자꾸 감추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도 욕구에 대해서 세심하게 반응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평소에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니 근본적인 욕구는 이런 것이었다. ‘휴식과 잠, 여유와 편안함, 혼자만의 시간, 인정과 칭찬.’ 이런 욕구를 생각하면 푸근하고, 홀가분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그런데 대부분 오늘날의 가장들은 어떠한가?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양보하고,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인정과 칭찬을 듣고 싶지만 비난과 거절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내 욕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다. 그러나 욕구를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배우자나 자녀, 친구, 직장동료, 부모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지금 소리 내어 이렇게 3번 말해보자.


 “나의 욕구는 가장 중요하다.”
 “나의 욕구는 가장 중요하다.”
 “나의 욕구는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면 더 고통스러워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에게 중요한 것(욕구)을 부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신의 욕구를 가장 중요한 걸로 인식하고 또 표현했을 때 정말 사랑하는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게 된다. 부모의 욕구, 나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속으로 억누르고 있지 말고, 표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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