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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현진 Oct 06. 2022

부모의 감정은 자주 길을 잃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 뇌 속에 있는 다양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라일리의 뇌 속에는 기쁨이, 슬픔이, 화, 소심이, 까칠이 라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라일리는 어느 순간부터 슬픔, 화, 소심해지는 마음은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 대신에 기쁘고 행복한 감정만을 쫓는다. 슬픈 마음이 올라오면 애써 외면하고 기쁜 마음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결국 라일리의 감정 친구들은 알게 된다. 슬픔이 없는 기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기쁨과 슬픔은 공존하고, 이 둘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감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가 나고, 슬프고, 반대로 기분 좋고, 행복한 느낌은 다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다. 무지개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고, 각각의 색에 부정과 긍정도 없다. 단지 색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검은색과 흰색,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낮과 밤, 빛과 그림자, 따뜻함과 차가움에 좋고 나쁨은 없다. 감정 또한 부정과 긍정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항상 밝은 감정만을 추구하려 한다. 슬픔, 화라는 감정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고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동시에 기쁨과 행복한 감정만을 느껴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동시에 우리 자녀들에게 그대로 요구하고 있다. 항상 맑은 날씨만을 추구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배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항상 맑은 날씨만 유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무는 죽고, 강은 말라버릴 것이다. 맑은 날씨와 동시에 비 오는 날도 필요하다. 그래야 자연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기쁨, 행복, 슬픔, 화 등 다양한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더 풍요롭고 균형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혼이 날 때는 주로 손바닥을 맞았다. 아픔과 동시에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손을 다 맞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 어머니는 계속 울면 손바닥을 더 때리겠다고 했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아 집 안을 도망 다니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울음은 감정을 해소시키며 진정시키는 프로세스의 한 종류다. 그러나 울음을 억제시킨다면 감정을 해소하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만을 느끼려는 경향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요구한다. 


울지 마, 싸우지 마. 화내지 마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억제하라고 배웠고, 나도 모르게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와 싸우는 갈등 상황이 싫었다.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도 불편했다. 그래서 계속 감정을 억제시키기에 바빴다. 결국 내가 불편했기 때문에 아이의 감정 분출을 무시한 것이었다


 비가 온 뒤 나무가 잘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도 울고 난 뒤 마음이 풍족해질 수 있다. 울지 말라고 하는 대신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안아주자. 아무 말 없이 옆에 진심으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곤 한다. 그렇게 한 참 안아주고 있으면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이내 놀 거리를 찾아다닌다. 


 아이들이 싸우면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갈등 상황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는 중이라면 어떨까? 부모는 심판이 되려 하지 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해보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곤 한다. 그러니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줘 보자.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아이가 화를 내면 감정은 받아주되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어떨까? 화라는 감정도 단순히 하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표현 방법이 존재한다. 이것을 알려주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해소한다.



 아버지 간 기증을 결심하고 난 뒤였다. 수술 자체가 기증받는 사람이나 기증하는 사람 둘 다 힘든 과정이라고 들었다. 그래도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사실 수술 전에 회사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하기에 바빴다. 내 감정 따위는 뒷전이었다.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당장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을 위해 회사를 휴직하고, 입원 후 수술하는 날 아침이 다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병실에 수술 침대가 도착했다. 여기에 누워서 수술실로 출발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솔직히 무서웠다.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용감한 척을 했다. 무서워하면 창피하고 나약해 보일까 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서고 작고 차가운 침대에 옮겨 누웠다. 수술실은 춥고 낯설고 무서웠다. 용감한 척을 하며 내가 수술을 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잘한 선택이었을까?’,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라며 누워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동시에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창피했다. 


 지금 생각하면 수술 전 이런 감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무섭고, 걱정되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런 당연한 감정을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이고 용감한 척을 하며 나 자신의 감정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외면했다. 수술 후에도 회복이 느려 힘들었지만 최대한 안 힘든 척을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나약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잘 회복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괜찮다고 했지만 수술 후 몇 달 동안 가슴 통증, 호흡곤란, 식은땀, 불면증, 구토로 계속 힘들었다.



 이렇게 내 감정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감정이 당연했음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나를 위로해 준다. 수술실에 누워서 무서워하는 나를 괜찮다고, 당연하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부모라면 부모 스스로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배우자와 아이의 마음도 받아줄 수 있다. 모든 감정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불편한 감정이라도 당연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우리의 감정이 길을 잃어도 괜찮다. 다 필요한 경험이고, 지금 이 길은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곳에 다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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