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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현진 Oct 18. 2022

먹고 싶지만 먹고 싶지 않아

 A 씨는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님은 외출했고 본인은 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집에 방문을 했다.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응. 먹고 왔다.”

 “다른 것 좀 차려 드릴까요?”

 “괜찮아. 얼른 마저 먹어라.”


 A 씨는 괜찮다는 할머니의 말에 라면을 마저 먹었다. 그 이후 친척 모임에서 할머니는 황당한 말을 꺼냈다.


 “제는 할머니한테 먹으라고 하지도 않고 혼자만 먹더라.”


 이 말을 들은 A 씨는 무척 난처했다. 분명히 할머니에게 식사 여부를 물어봤고, 괜찮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친척들 앞에서 예의 없고 못 배운 아이가 되어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한 번 물어본 것은 물어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물어 봐 주길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내어주면 못 이기는 척 먹는 것에 익숙했을 것이다. 



 A 씨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바로 나도 이런 행동 패턴을 보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내가 과일을 깎아준다고 하면 먹고 싶어도 일단은 괜찮다고 했다. 세 번 이상은 물어봐야 알겠다고 하고 못 이기는 척 먹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는 어떨까?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양보하고,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는 인내하고 참고 욕구를 쉽게 드러내지 않도록 배워왔다. 어릴 때부터 욕구를 드러내면 비난과 거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욕구를 드러내면 성숙하지 못한 사람, 가벼운 사람으로 비추게 된다. 원하는 것을 꽁꽁 숨기고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스무고개를 하듯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서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 노력을 통해 서로의 욕구를 찾아내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면 실망하고 관계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말자.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만이라도 욕구에 솔직해져 보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고,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해보자. 그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나요? 참고 살기도 하고 그래야죠.”


 맞는 말이다. 때로는 절제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욕구를 감추지 말고 표현도 할 줄 알아야 정서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욕구의 좌절을 겪지 않으려면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쓸데없는 짓 해보기

 잘 자고, 잘 먹고, 운동도 했는데 어딘가 뭔가 허전하고, 외롭고, 지치고, 피곤한 경우가 있다. 저자의 경우 앞에 언급했듯이 자고 싶고, 쉬고 싶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런데 자고 또 자도 피곤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무기력해지고 지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겉으로 보이는 욕구 더 깊숙한 무의식 속에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 경우이다. 근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야 겉으로 보이는 욕구도 없어진다. 그 무의식에 있는 욕구를 어떻게 알아낼까? 지금 의식 차원에서 내가 원하는 이 욕구를 다 해결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한번 상상해보는 것이다.


 내가 최고급 휴양지에 있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옆 고급 맨션에 있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푹 잤다. 코스 요리로 랍스터, 초밥, 스테이크 이런 음식을 매 끼니때마다 잘 먹었다. 산책하고 책 보고 놀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몇 달 동안 또는 몇 년, 몇십 년 동안 그런 생활을 했다고 상상해 보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하고 나면 그때 뭘 하고 싶을까? 나의 경우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성취해보고 싶은 욕구를 발견했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면서도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



 초창기 주변의 시선은 이랬다.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냐.” 남들이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는 것일수록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내 감정, 느낌, 욕구를 존중해 주면서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의 욕구 안에는 더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면서 쓸데없는 짓을 하다 보면 욕구 안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욕구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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