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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현진 Sep 19. 2022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관찰 | 인간 지성 최고의 형태는 관찰이다



 아빠 육아에 대한 강연을 시작한 지 5년 차가 되었다. 초기에 대면으로 진행했던 강연에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많았다. 코로나19 유행 후 비대면 강연으로 변해가면서 점점 아빠의 참석 비율이 높아졌다. 아빠들도 양육에 관심이 더 많아진 것이다. 야근하면서 몰래 휴대폰으로 접속해서 참여하기도 하고, 퇴근길 차 안에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는 아빠 등 그 모습도 다양하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실내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크고 작은 마찰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각자 나름대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강연에 참석을 한다. 이런 아빠들에게 꼭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오늘 아버님들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아빠들은 처음에 망설인다. 자신의 기분을 신경 써서 관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오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을 중심으로 그때의 기분에 대해 말해 보라고 말이다. 그러면 “기대된다”, “기분 좋다”, “힘들다”, “짜증 난다”, “피곤하다”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렇게 아빠 자신의 기분에 대해서 말로 표현함으로써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가게 된다.

 가정 내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소통이 어렵다는 아빠들이 많다. 마음은 있지만 표현이 서투르다 보니 가족과의 관계가 쉽지 않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사회생활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집에만 오면 이상하게 짜증이 나고 신경질 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집은 심리적으로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이런 정서적 안전지대라는 느낌 때문에 자칫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아빠가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가정에서 순간순간 더 감정이 욱! 해질 것이다. 아빠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 자책을 한다. 아이가 너무 떼를 쓰고 있으면 ‘내가 화를 많이 내서 그런가?’하는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빠의 감정을 자꾸 억누르고 감추고 참으려고만 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풍선효과처럼 어느 순간 한꺼번에 엉뚱한 곳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특히 동양권 내의 남자라면 감정을 쉽게 표현하면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배워 왔다.

 나도 세 아이를 키우면서 감정을 항상 억눌러왔다. 내가 참아야 가정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감정을 억누르고만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아빠들은 감정을 억누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고, 자책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억압된 감정은 아빠를 우울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런 모습을 본 아이들은 이런 아빠의 감정 패턴을 그대로 보고 배우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에 몸이 꽁꽁 얼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세 아이들도 나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했지만 반가운 아빠를 계속 보고 싶어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샤워를 계속 이어갔는데 아이들이 샤워부스 문을 갑자기 열었다. 물이 밖으로 튀고 아이들 옷도 젖어버렸다. 다시 문을 닫고 샤워를 하는데 유준이가 샤워부스 유리문 손잡이에 매달리고 있었다. 유리문이 깨질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와 아이들과 놀이를 시작했다. 흥분한 아이들은 권투 놀이를 하며 강도가 점점 더 강해졌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이들에게 실컷 얻어터진 후에야 놀이가 끝이 났다. 샤워부스에서 아이들이 나가지 않고, 문을 열어 물이 튀겼을 때 짜증이 났다. 유준이가 유리문에 매달리고 있을 때는 화가 밀려왔다. 권투 놀이를 할 때는 강도를 약하게 하기로 약속했지만 중요부위(?)까지 마구 맞으니 고통이 밀려왔다. 이런 감정은 막상 그 시간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불편한 감정들을 기억하고 관찰하면서 조금 더 명확해짐을 느꼈다. 모르는 것은 긴장되고 두렵다. 하지만 실체가 보이고 대상을 알 수 있게 되면 안심이 되고 긴장감이 줄어든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평소에 불편한 감정이라고만 느끼고 지나치면 그런 감정의 찌꺼기가 마음에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어떤 감정인지 구체적으로 바라보면 명확해지고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기체를 고체로 바꾸어 손에 잡는 것과 비슷하다.


 

 아빠가 가족에게 상처 주지 않고 스스로도 정서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번째, 아빠 자신의 마음 상태부터 ‘관찰’한다. 

위 사례에서처럼 ‘지금 내 기분이 어떻지?’하면서 내 감정을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반복하다 보면 ‘내가 지금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고 하는구나.’ 또는 ‘마음이 뭔가 불편하다’ 등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감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서 휘둘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감정은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자신의 감정을 ‘인정’ 해 준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아 어제 잠을 못 잤구나.’

 ‘오늘 애가 떼를 많이 써서 그렇구나. 맞아. 이러니까 내가 당연히 짜증이 났지’ 


이렇게 내 감정을 '관찰'하면서 부정적으로 느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에 죄책감을 가지는 대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심리 용어로 ‘수용’이라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지만 반대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아이에게 화를 내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의 흐름 대신에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관찰과 인정을 반복하다 보면 크게 화내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버럭!’하고 화가 났는데 '아~ 내가 화가 많이 났구나'하면서 평온하게 관찰하고 인정해 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감정이 잔잔한 평소에 수시로 내 감정을 들여야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의 감정을 '당연한 거야' 이러면서 인정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배우자나 아이의 감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타인을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을 깊게 봄으로써 여러 인간을 깊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공통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잘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단서 없이 암호를 해독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토마스 홉스는 자기 자신을 모른 채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것은 매우 모순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자기 이해’가 먼저임을 강조한 것이다. 나를 먼저 이해해야 가족에 대한 이해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소통해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공감해주고 경청해주라고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육자인 부모의 감정이다. 특히 아빠가 자신의 감정도 받아주지 못하면서 누구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단 말인가? 제일 높은 우선순위는 나 자신이다. 아빠의 감정이 편안하면 아이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불편한 감정이 들 때 스스로 억압하지 말자. 잘못된 것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인정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배우자와 아이의 감정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소중한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내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인정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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