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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현진 Sep 15. 2022

아이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이다


9시가 되면 취침시간이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때문에 9시에 바로 자기란 항상 어려웠다. 아이들을 달래서 방에 눕히고 불을 꺼줬다. 한 명씩 뽀뽀를 해주며 잘 자라고 인사를 해줬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데 7살 유준이가 뜻밖에 말을 꺼냈다.


 “아빠. 사실 난 우주에 있는 별이었어.”

 “오. 그래? 멋진데.”

 “응. 우주에서 아빠를 보고, 아빠 아들 하고 싶어서 지구에 온 거야.”

 “와~ 그랬구나. 아빠 아들이 하고 싶었구나. 너무너무 고마워. 진짜 기분 좋다.”


 아이가 상상해서 한 말인지 만화에서 본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니 기분은 좋았다. 그것도 아들이 되고 싶을 만큼 내가 선택받았다는 것이 비록 상상일지라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평소 아빠가 좋다며 와서 애교 부리고, 안아달라고 하고, 뽀뽀를 해준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그런데 이 기분이 단순히 기분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우주에 있는 별, 즉 우주가 나에게 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달래고 안방으로 돌아와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머릿속이 ‘몽실몽실’하며 감동에 취해있었다. 그런데 그런 감동도 잠시, 막내딸 아이가 안방으로 왔다.



 “아빠. 난 졸린데 오빠들이 안 자고 자꾸 장난쳐.”


 오빠 두 명이 잠자기를 거부하며 자주 장난을 쳤다. 채윤이 손을 잡고 아이들 방으로 갔다. 이불과 베개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침대에는 장난감과 책들이 뒤엉켜 있었다.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다시 침대 자리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눕혔다. 이제는 정말 잘 시간이라 알려주고 안방으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이제 막 글을 쓰려는데 채윤이가 왔다.


 “아빠. 오빠들이 계속 안자. 자꾸 장난쳐서 내가 잘 수가 없어.”

 “뭐? 이놈들이…”


 채윤이 손을 잡고 다시 아이들 방으로 갔다. 유준이만 방에 보였다. “서준이 어디 있어?” 빨리 나와.” 서준이를 부르니 거실 커튼 뒤에 숨어 있다가 ‘슬금슬금’ 나왔다. 아빠에게 혼날까 봐 숨어 있다가 나온 것이다. 서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고 떠들며 전체적으로 흥분상태에 있었다. 아이들을 다시 눕히고 나가려는데 “아악!”하며 주저앉아버렸다. 발바닥에 뭔가 찌르는 느낌이 났다. 바닥에 있던 레고 장난감을 밟은 것이었다. 어두운 방이라 못 본 것이다. “얘들아. 장난감 좀 정리하자고 했지?!”

 다시 안방으로 가도 채윤이가 와서 고발하고, 장난치는 오빠들에게 주의를 주고 눕히고를 반복했다. 이렇게 몇 번 하니 점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아이들이 우주고 뭐고 화가 끓어올랐다. 결국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잘못은 없다며 서로를 탓하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도 서로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유준이는 뭔가 억울했는지 말을 꺼냈다.



 “아빠는 내가 필요 없어? 이럴 거면 왜 날 낳은 거야?”


 머릿속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 또한 어렸을 때 이런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속으로만 삭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달래서 다시 눕혔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한 명씩 뽀뽀해주고 안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세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걸까?’ 근본적인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아이를 손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부모가 지구에 초대한 손님이라고 말이다. 손님을 초대해서 푸대접을 하진 않는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편안하게 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최대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다치면 치료해주고, 울고 있으면 위로해주며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준다. 지구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손님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혼내기보다는 알려주고, 그래도 모른다면 알 때까지 알려준다. 


 “당신이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을 여기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세요. 앞으로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에게 혼이 날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초대한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엄마, 아빠가 널 얼마나 힘들게 키운 줄 알아?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런 말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심어준다. 감사와 존경은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싹튼다. 우리가 초대한 아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지구에 무사히 도착해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오히려 더 고마워해야 한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된다고들 한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삼 형제를 키우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도 더 잘 알게 되었다. 어떤 순간에 즐거워하고, 불편해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욕구’를 가지고 ‘표현’하는지 말이다. 우리가 우주에서 초대한 손님인 아이들.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즉, 우주를 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글과 함께 우주를 얻으러 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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