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번 산 고양이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그러니까 백만 년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가 누군가의 고양이로 살고 죽고를 반복했지만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길고양이로 태어나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자 비로소 자신을 좋아하게 된 얼룩 고양이가 그렇게 자신만을 좋아하다가 어느 흰 고양이를 만나 사랑에 빠져 새끼 고양이를 낳고 오래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 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죠. 할머니가 된 흰 고양이가 죽게 되자 비로소 처음 울게 된 얼룩 고양이는 밤낮을 잊고 백만 번을 울다가 자신도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오랜만에 글로 늦은 안부 전합니다.
이제 정말 겨울의 한가운데로 달려가는 듯한 날씨지만 어떤 하루 보내고 계시나요?
온전하고 느리지만 따뜻한 하루가 되시기를.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는 데는 얼마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한쪽 눈만 보이는데 그 눈마저 보이지 않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이 일은 평소라면 의식조차 하지 않았을 내 안의 어떤 마음들과 '비로소'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 특히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우리 관계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 브런치북을 시작했던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어느 주말
남편과 아이와 함께 늦잠을 자고 이불속에서 한참이나 뒹굴던 주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운의 그림자는 언제나 평온하고 평범한 날에, 느닷없이 초인종을 기분 나쁘게 눌러대며 문 밖에 서 있는 누군가와 같다는 사실을, 또 잊고 있었습니다.
느지막한 오후 6시, 행복감에 젖어 있던 집안의 분위기가 2,3도쯤은 차갑게 식는 일이 일어났지요.
주말에 남편과 번갈아 일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상담이 있는 남편에게 얼마간 아이를 맡겨두고 아파트 단지 내 카페에서 ChatGPT로 산스크리트어 검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키코와의 에세이에 <백만 년 동안 산 고양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삼사라saṃsāra, 모크샤mokṣa 같은 단어 따위를 키보드에 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별안간 글자가 춤을 추듯 일그러졌습니다.
만화경을 아실까요. 내 눈앞의 여러 형상들이 다만 색채로써 조각이 난 채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눈을 재차 비벼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부릅떠보아도 어떤 정확한 형상을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모니터의 빛들이 산란되며 빛나고 있었지요. 내가 살면서 본 어떤 보석들보다 빛나게요.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금방 왔다며 "이제 연극하자 연극!" 하며 소리쳤고, 남편은 주방에서 텃밭에서 따온 무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무를 씻으며 "응? 왜 이렇게 빨리 왔어?" 하며 물었습니다.
재차 물어도 내가 대답이 없자 그는 두 손에 물을 뚝뚝 흘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제야 나는,
"눈이 안 보여. 글자를 읽을 수가 없어."
남편은 응급실에 가야 한다며 허둥댔습니다.
나: 응급실까지는 갈 필요가 없을 거 같아. 기다렸다가 내일 아침에...
남편: 아니, 가서 응급처치는 할 수 있잖아.
나: 응급'처치'라는 게 없어. 눈은.
낙담하며 말하는 순간 모든 일그러짐이 일순 사라졌습니다.
불과 30분 만에 사라졌어요. 마치 거짓말은 한 것처럼요.
우리는 날이 밝은 대로 병원에 가보기로 합니다.
월요일
예약 없이 안과를 찾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다렸습니다. 7-8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수술부터 15년 넘게 눈을 봐주신 선생님께서는 안과 기능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그다음은 신경과에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MRI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온다는 서울의 한 병원을 방문하기로 하고 금요일에 방문하기로 합니다.
화요일
남편은 해외출장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출장 전날 아무래도 불안하다며 저를 응급실로 데려갔지요.
난 응급실까지 갈 필요가 없다. 기다려보자 했으나 그는 "나를 위해서라도 가줘."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잠깐의 눈 이상을 빼고는 누가 봐도 괜찮은 상태였지요.
응급실 입구를 지키는 접수요원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얼마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새벽에야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말에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플 때는 다른 사람이 기분과 태도를 쉽게 판단하게 됩니다.
남편과 내가 병원 몇 곳을 오가는 사이, 평소라면 문제랄게 없을 일들이 쌓였습니다.
그는 안과를 같이 가줄 때에도 겹친 다른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고, 그 약속 때문에 나는 추운 날 밖에서 40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내가 안과 검사를 받는 사이 내 핸드폰과 카드를 모두 들고 약 처방을 위해 다른 병원에 가버렸지요.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를 생각해 사 왔다는 커피는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응급실까지는 안 가도 될 것 같다는 내게 자신을 봐서라도 가달라고 했지만 정작 응급실에서는 취소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며 저를 혼자 두려고도 했지요.
눈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혼자서 수술을 받았던 경험이 있고, 10년 넘게 대학병원에 다닌 나는 그 공간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목이 메었습니다. 저는 미친년처럼 자동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길에서 제가 타고 있는 차를 보았다면, 디스코 음악에 손과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술주정하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일부러 나를 지치게 만들기 위해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우연히 이런저런 일과 시간이 겹쳐 일어난 일일 뿐이지요.
아픈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1분 부족하게 삶은 반숙의 노른자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그냥 흘러내립니다. 혼자가 된 것 같은 불안과 외로움으로 내 마음은 흘러내렸습니다.
수요일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가는 날 아침입니다.
내가 자는 사이 그는 새벽 늦도록 밀린 빨래를 하고, 냉장고 청소를 하고, 텃밭에서 캐논 채소를 다듬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당신 힘드니까, 신경 쓰지 않게 내가 다 해놨어."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가 잠을 조금도 자지 않고 먼 길을 떠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그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과 배려가 고맙지만은 않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제 옆에 있어주는 것인데 말이지요. 그의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이래도 달리는 차에서 눈이 또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나의 시퍼런 불안을 재워주길 바랬어요.
깊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또 살아간다는 사실에,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 같은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깨달아 버린 탓이었습니다.
또 입장을 바꿔서 나에게도 어김없이 해당하는 질문들에 그만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내가 사랑한 것은 이 사랑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내 방식의 사랑도 남편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남편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한참 건너고 있을 동안에도 저는 답을 찾지 못했어요.
금요일
라는 다소 허무한 결론을 듣기 위해 신경과에서 뇌 MRI MRA 등 검사를 받았습니다.
모든 검사에서 '이상 없음'이 나왔기에 두통약만 처방받았습니다.
두고 보자는 것이죠. 삶의 대부분의 일들은 그렇게 두고 볼 수밖에 없는 일들 태반이니까, 그렇게 뭘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요.
"다시 또 눈이 보이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 병원에 다시 와서 뇌파검사를 받아봅시다."라는 말로 저의 병원 투어는 일단락되었습니다.
한 달 여가 넘은 지금까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행일까요.
다시 화요일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몇 번인가 다투었고, 몇 번인 가는 밤늦도록 무릎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또 몇 번인 가는 사랑의 포옹을 주고받기도 했지요.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흘러가는 듯 보입니다.
어떤 결정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들.
브런치북 중후반이 지나면서도 어떤 믿음, 내가 아닌 당신의 마음을, 생각을,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만만했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글 안에서 발견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오로지 나 자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은 꽤 슬프고 불안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억울하고 분하고 사랑을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싶고, 울고 싶을 때 얼굴 찌푸리며 입꼬리를 가까스로 올리며 웃는, 그런 슬픈고도 처연한 얼굴.
그 슬픈 얼굴이 저는 마음에 듭니다. 이제야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나를 민낯으로 마주한 기분이었지요. 마치 얼룩 고양이가 누군가의 고양이로 살다가 길고양이로 태어났을 때야 비로소 자신을 좋아하기에 이르렀던 것처럼요.
그렇게 저는 흰고양이와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낳았죠.
남편은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었습니다. 아마도 나의 죽음을 떠올렸겠지요.
저 또한 그가 '없음의 상태'라고 상상하면 스스로가 놀랍도록 숨이 쉬어지지 않습니다.
없음은 있음을 드러내고야 말지요.
죽음을 감각해야만 자기 다운 결정, 자기 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가요.
나는 그렇게 당신과 나의 죽음을 가늠해 보며 이런 결정을 했습니다.
'타인을 또는 세계를 이해하기'라는 카테고리에 '실패'라는 단어를 붙여야만 하겠다고요.
이해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잘' 할 수도 없으니
그저 '곁에 있음'을 위해서만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니 나는 또 어떤 질문에 나를 던져야 하는 걸까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와중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 질문 끝에 여기 또 하나 내린 결정이 있습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멀지 않고,
인생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는 일이라면,
서로의 곁에 없음이 못 견디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라면,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둘째 아이'라고 결론을 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믿기지가 않고 도무지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다른 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바람 같다는 생각마저 드니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