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느 가정에나 이혼의 위기는 있다.
없다는 말은 정말로 거짓이다.
위기가 지나갔거나 혹은 수면 바로 아래 머물러 있거나, 이제 막 시작됐거나.
이혼과 관련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글은 시댁과 관련한 것이었다.
“시댁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 이혼을 대한 생각들에 이야기하고 싶어.
써도 될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좀 그렇다고 이야기할 줄 알았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쓰고 싶은 대로 써보는 게 어때. “
시댁도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이혼을 해야 할 마땅한 이유들이.
시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그 이유도 아주 흔하디 흔하다.
돈, 바람, 도박, 폭력, 무책임, 술, 성격차이 중 하나다.
어쩌면 우리 아빠처럼 쓰리콤보일 수도 있지만, 세세하게 말하지 않겠다.
이번화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혼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시댁도 여러 이유로 늘 이혼의 문턱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싸움이 반복되는 가정에서 자란 나의 짝꿍과 그의 동생은, 긴 시간 불안과 우울을 겪었다.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고 싶어 남편은 상담사가 되었고, 시동생은 명상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문제는 계속 반복됐다.
짝꿍이 나와 결혼한 지 6년.
그 사이 두 번의 반복된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남편, 시누이, 나와 어머니는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모두의 입장은 '앞으로도 반복될 거다. 이제 그만 이혼하시라'였다. 시어머니 빼고.
나는 마치 기세등등한 대책위원위장과 같이 행동했는데, 왜냐하면 나에겐 훌륭한 레퍼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제 친정아버지 보세요. 결국 자기 멋대로 살다가 혼자 요양병원에서 그렇게 갔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람은 안 변해요.
어머니는 우셨다. "나도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이혼하고 싶었다. 애들 때문에라도 못했고, 그리고 이혼을 하면! 어떻게 사니? 네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내가 아파서 병원을 매일 가다시피 하는데 한 달에 병원비가 얼마나 나오는 줄 아니? 그리고 또 ~~~~, 또~~~~~, 또~~~~~“
어머니에겐 이혼하지 않을 이유가 많아 보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하신다고 하면 저희가 방법을 마련해 볼게요. ~~~~"
…
너희는 왜 나보고 이혼하라고만
하는 거니??
“아버지는! 네 아버지는 나 없으면 금방 죽을 거야. 술도 자기 마음대로 마실 거고, 지금보다 더 멋대로 살다가 길바닥에서 죽을 것 같아. 그걸 내가 어떻게 보니. 네 아빠는 나 없으면 오래 못 살아. “
"....."
나는 당황했다. 며칠 전까지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것 같다던 시어머니는 도대체 누굴 걱정하고 있나.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산다고 했던 사람 도대체 어디에 있나.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 제가 보기에는 어머니께서 아직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이혼은 안 하는 거죠.”
“그래, 내 친구들도 다 나한테 그러더라. 넌 그러고도 사니 하면서 그게 사랑 아니면 뭐냐고.
물론 난 아니야. 사랑은 무슨. “
어머니의 속마음을 아는 순간 나는 어떤 이유로든 자식들이 먼저 이혼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했다.
남편은 말했다.
“엄마한테 아버지는 남편이 아니라, 자식이야. 자식을 어떻게 버리겠어. 버리고 싶어도 못 버리는 거야.”
사실 그 뒤로 사건은 한번 더 반복됐다.
하지만 우리 중 아무도 ‘이혼’의 ‘이’자도 꺼내지 않았고, 어찌어찌 유야무야 넘어간 듯 보인다.
그러고도 또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닌 채 흘렀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글쎄 둘째가 나한테 뭐래는 줄 아니? 자기는 결혼하니까 좋다더라고. 김서방이 잘해준다고, 그런데 엄마는 왜 그런 아빠랑 이혼도 안 하고 여태 살았느냐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딸아 너도 이제 애 낳았으니까 알 거야, 이혼하는 게 쉬운 줄 아니?
자식도 있고, 더 살아봐라 했지. 정말 그렇지 않니? “
"어머니 저는 이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엄마를 보고 자란 게 있어서요."
"아이고 얘는…“
"그런데 전 지금은 안 하죠. 남편을 사랑하니까요."
"어머니도 사랑하시잖아요. 아버지를"
“얘는 뭘 또 사랑이니.”
도대체 이혼은 뭘까 싶다.
우리 엄마를 보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시어머니를 보면 세상 어렵고.
이혼 가정에서 자란 친언니는 손톱이 거의 없었다. 다 물어뜯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세상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또 어떤가. 남자를 도무지 믿지 못해서 상처받기 전에 이별을 고하는 쿨한 척만 하는 사람이 되었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주의자가 됐다. 예를 들어 폭식 같은.
이혼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남편과 시누이는 부모가 이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나?
그렇지 않다. 그들도 오랜 시간 너무 아프고 너무 상처 입었다.
그리고 여전히 원가족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이들 네 명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나타나 지금의 관계를 헤집어 놓기도 한다.
네 명의 케이스만 봐도 이혼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러니 이혼 같은 것은 도무지 모르겠다.
이혼을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것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엄마의 부재로 그녀를 원망한 때도 많았지만 난 진심으로 엄마의 이혼을 바랐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게 정말로 쉬울까?
아빠 없이 자라게 하는 게, 엄마 없이 자라게 하는 것이.
그렇게 원망과 분노와 애증의 시간들 때문에 절망의 30년을 보내놓고?
그렇다고 '사건'의 한가운데에 아이를 그냥 둘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이혼이 결괏값이라면, 그 값에 도달하기 전에 즉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에 나를 바꾼다.
상대가 바뀔 가능성보다 나의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니 나의 마음을 바꾼다. 나의 생각을 바꾼다.
브런치북을 시작하면서는 다소 가벼운 마음이었다.
이혼? 사실 못할 것도 없지.
쓰다 보니 내가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의 불안, 나의 걱정, 나의 두려움들을 쏟아놓고 보니 저절로 이해되는 순간들이 왔다. 엄마도 아빠도 짝꿍까지도.
그러니 지금은 왜 나만 바뀌어야 돼? 보다는,
나만 바뀌어서 될 일이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겨우 생각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원칙은 큰 일에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알베르 카뮈
지금으로서는,
남편을 위해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아이를 위해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우리를 위해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대문사진: Unsplash의Kelly Sikke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