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다르다면,
부부싸움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 아이 양육이나 교육이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교육관이나 양육의 방향이 다르면 그것만큼 비극이 없을 것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면 아이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지 않을까.
어릴 때 학원을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단 한 곳.
10살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으니 미술학원만 다닌 셈이다. 이따금 영어학원.
엄마는 성적표를 보자는 말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성적표를 본 적은 두 번이 채 안 된다.
중3 때부터는 엄마와 따로 살았으니, 보여줄 틈도 없었다고 해야겠지만.
부모의 무관심이 나를, 내 힘으로 살게 했다.
내가 졸업한 뒤 자립형 사립고가 될 정도로 빡셌던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쉬는 시간에도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했다.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예체능이면서 유난이야."
그들은 몰랐겠지. 유의미한 성적만이 내가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접시가 날아다니는 집에서 살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그게 공부든 무엇이든.
남편의 어린 시절을 묻자,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00이처럼 책을 많이 읽는 애는 없었을 거야.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을 정도였다니까."
똘똘한 남편에게 "서울대 가야지?"라는 기대는 제법 어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 별명은 줄곧 '잠신'이었다. ADHD의 성향으로 집중하고 싶어도 도저히 집중을 못하던 때도 많았다고 한다.
2등에서 20등을 오가던 시절을 보냈고, 남편은 학창 시절을 제일 암울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4년 전장을 받고 과수석으로 대학교를 입학한 그는, 1년 만에 전장을 무효로 만들었다. 화염병을 던지며 세상에게 좆 까라고 말하는 낭만의 시대를 보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좋은 학교, 좋은 성적을 아이에게 요구할 수 있는 보기에 '그럴듯한 인생'으로부터 멀리 와버렸다. 무엇보다 결혼하기 직전 인도 오로빌, 미국 트윈옥스, 영국 부르더호프, 독일 제크 공동체 등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추구하는 평균의 삶과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 스스로를 과도한 경쟁에 몰아넣는 삶을 살게 했다.
남편은 남과의 경쟁을 통해서는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다.
물론 학교는 우리에게 한 때 좋은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하는 일, 그가 하는 일에 그런 것들이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가?
내 꿈은 언젠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고, 남편의 꿈은 공동체적인 삶일 뿐인데.
이런 삶에는 자격보다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자연히 아이를 대안교육기관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다섯 살이고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며, 이후 초중고 과정도 발도르프 대안학교에 보낼 예정이다.
교육이란 학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떤 가치로 살아가는지,
아이와 어떤 경험을 같이 하고 어떤 세상을 보게 할지,
아이에게 어떤 책임감과 의무를 줄 것인지,
아이의 떠나는 뒷모습을 언제 볼 것인지에 대한 것들을 나누는 것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서 시작해 100여 년 이어져 온 발도르프 교육.
발도르프 학교에는 단일한 교과서와 성적표가 없다.
대신 아이가 수업의 흐름을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스스로 엮어 교과서를 만든다.
발달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원칙 아래, 7세 전에는 인지 학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1학년은 아주 기초적인 읽기·쓰기·셈부터 출발한다.
노래로 셈을 익히고, 그림과 공예로 과학과 역사를 만나며, 배움 전체가 예술처럼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디지털 매체 사용을 최소화하며 선행·사교육은 하지 않는다.
아이를 보내려는 학교는 16세 이전까지 휴대폰 등 전자기기 소유 및 사용을 극히 제한한다.
한국에서 발도르프학교는 아직 미인가이기 때문에, 초·중·고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아이가 대학에 가고자 한다면, 수능 교과목 공부를 보충해야 하기에 졸업 후 1년 정도 더 시간을 써야 한다.
현실적인 비용도 부담이다. 학비와 기타 경비를 합치면 월 100만 원 안팎(학교마다 상이)으로 잡아야 한다. 대안교육을 위해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까지 했는데, 가까이 있던 발도르프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통학까지 고민하고 있다.
사교육 열풍에 반대하면서도 대안적 교육을 찾는 나 또한 다른 ‘유난’ 일지 모르겠다.
아이가 갈등을 부딪히며 살아야죠.
결국 험난한 세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안 좋다는 거는 다 피하게 하고,
오히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는 거 아니에요?
그럼 사회 적응이 힘들지 않겠어요?"
발도르프교육을 이야기하면 간혹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그러게 말이다. 고등학교까지 무료인 공교육을 놔두고 이럴 일인가 싶다가도 여러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여러 발도르프 학교의 입학 설명회를 찾았다.
(아이가 다섯 살인데 벌써 입학설명회를 다닌다는 것만 봐도 유난 맞다.)
질문했다.
"공교육이 아닌 대안학교를 선택한다고 하면, 특히 발도르프 교육을 이야기하면 주변에서 아이가 자라는 세계가 너무 작은 거 아닌지, 필터링된 세계에서 살게 하는 것 아닌지를 묻더라고요. 더구나 1학년부터 8학년까지 선생님 한 분이 담임을 맡으시고, 10명~15명 남짓 아이들이 8년을 같이 보내잖아요. 이런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한 학교에서 8학년 담임제를 두 번째 하고 있다는 선생님이 대답을 해주었다.
"저희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8년 정도 지내면 '서로의 냄새'까지 안다고요. 살면서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살 부비며 사는 가족들처럼 서로의 냄새까지 알기는 어렵지요. 세계가 넓고, 관계하는 사람이 많아야 깊게 아는 것은 아닐 겁니다. 긴 시간 동안 타인에 대해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끝까지 깊게 느낀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도 너무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는 것도 너무 싫어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학교는 다녀야 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니까, 서로 어떻게든 조율을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과 끝까지 맞추며 생활을 해 본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갔을 때 적응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아이를 특이하게 보기도 하겠지. 아마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우리는 하나만 가르치면 돼. 사랑한다는 게, 사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의 태도만 가르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어. 그렇게 하면 잘못된 방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알게 될 거야,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그걸 깨닫지 못해서 사람들이 아픈 거잖아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관계를 쌓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어."
이집트의 고대 신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신 앞에 선다고 한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너는 살면서 기쁨을 찾았니?"
"Have you found joy in your life?"
"그리고 너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었니?"
"Has your life brought joy to others?"
내가 죽어서 받는 질문이라는 것이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놀랍다. 여기서 joy는 내면의 지속적인 기쁨을 뜻한다. 자신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존재 자체로 기쁨이 되는 삶.
이 질문을 품으며 아이를 길러야겠다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아이가 자신에 이 질문에 '흔쾌히' 답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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