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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Mar 11. 2020

임산부, 15시간 한국 가던 길

내게 가장 특별했던 280일 (6)

내게 가장 특별했던 280일 (1)

바야흐로 때가 왔다. 임신 24주차, 미국에서 한국 친정집으로 향하던 . 2019 크리스마스 이브, 코로나에 대한 걱정은 1 없던 시절이었다. (, 그리웠던 과거 일상이여!) 각국의 사람들을 시시각각 마주쳐야 하는 공항이라는 공간에 대한 공포도 없었고, 마스크를 해야만 하는 갑갑함과 서로서로를 두려운 눈빛으로 경계하고 거리 둬야 하는 불안감도 없었다. 단지 내가 두려웠던  ‘15시간 남짓 되는 비행시간을 무탈히  버텨낼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으니까. 입덧  없이는 하루도 견뎌내기 힘들었던 초기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견딜 만은  나날들이었지만,  시간 벗어날  없는  공간에서 버텨야만 한다는 미션은 임산부가 아닐 때도 힘든  아니었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행이었지만 장시간 비행 미션은 불안+부담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비행 편. 무사히 15시간의 미션을 잘 마칠 수 있을까. 다리 쭉 뻗고도 불안초조.


꼭꼭 씹어서 
정말 천천히 먹어야 


24주차, 무엇보다 소화기능이 말썽을 부리고 있던 터라, 남편은 떠나는  아침 내내 당부  당부했다. 비행기를  때마다 설레는   하나가 기내식 타임 아니던가. 무료하기 짝이 없는 기내 분위기 속에서, 음식에 흥분한 나머지 그릇을 덥석 쥐고 후루룩 후루룩 먹어치우면 단단히 체하고   분명했다. 기내 탑승 , 라운지에서도 식혜  잔과 과일  알만으로 식욕을 채우려 애썼다. 맛있어 보이는  가지 육류요리와 컵라면 유혹을 뒤로한 . '많이, 급히 먹으면 나도, 아기도 힘들  뻔하다' 당연한 진리를 가슴에 꼭꼭 눌러 새겼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법의 호르몬이  주체할  없는 식욕을 언제 피워오를지 모를 . 워워. 마음으로는 먹고 싶어도 머리로 눌러야 하는 아이러니 순간.


기내에서의 식욕조절 외에도 중요한 미션 하나가 더 있었으니, 뉴욕 공항 보안검색대 무사히 통과하기. 인천공항에서야 임산부 탑승객에 대한 이런저런 배려가 세심하게 주어지지만, 그 외 해외공항, 특히 미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대한 보안 검색은 유독 더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팻다운 (손 검색)을 요청해도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금속탐지기나 기타 방사선에 혹여 노출돼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할까 봐 내내 초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기를 보호해야 해.”


다행히 딱히 임산부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팻다운 요청을 수락받을  있었다. 미리 사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 임산부 같아 보이지 않아 보일까  일부러 타이트한 옷까지 입고 공항으로 출동했던 나의 전략이 무색해져버렸다. 다만 공항 여직원이  위해 따로 출동할 때까지 꽤나 오래 기다려야 했고, 굉장히 퉁명스럽고 불친절했다는 사실은 굳이 부인하지 않으리. 그럼  어때. 아무튼 미션 완료!


"임신 24주차, 딱 좋은 시기에 탑승하네요" 체크인 때 직원분께서 건넨 말씀. 그래도 15시간 비행은 여전히 떨리잖아요.


이게 얼마만인가. 탑승시간 기다리며 라운지에서의 식혜 먹방. 반가운 한국 식혜 안녕? 보고싶었어.


살면서 흔치 않게 마주하게  순간. 임산부로서 오랜 시간의 비행을 견디는  역시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아마도 임신 중 탑승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수도 있을  순간. 오랜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부담감을  '특별함'으로 포장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모든지 마음먹기 나름. "이건 임산부임에도 겪어야 하는 힘겨움이 아니라, 임산부이기에 경험할  있는   되는 순간이야." 스스로 최면 걸기.  국적기를 이용하다 보니, 기내에서는 기대 이상 특별한 보살핌을 받았던 것도 감사했던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다림 하나 없이 1등으로 비행기에 탑승할  있었고, 탑승하고 있는 내내 '혹여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준 승무원들 덕분에 불안 틈이 적었다.  잠은 한숨도 제대로  잤다는 사실. 아마도 1년여 만에 한국에 간다는 설렘 덕분이었으리라.

 

야금야금 최대한 천천히, 차분하게, 조금씩 먹기 도전!!! 식욕폭발했다가 늘 소화가 안돼 고생했던 임신 24주차.
다행히도 하나도 얹히지 않고 잘 소화됐던 맛있던 기내식. 사진만 다시 봐도 군침도는 이 순간!


태교여행을 위해서도 안정기쯤 네댓 시간의 비행을 한다고들 하는, 그에 비해  3배쯤에 달하는 비행시간은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았다. 예전엔 영화 한두   , 잠을 청하다 보면 시간이 어느새 후루룩 지나가곤 했던  같은데 어찌나 시간이 더디게 가던지! 서너시간이 넘어가는 순간 가장  고비였다.  해도 지겨워서 몸이 배배 꼬이기만 했던 고난의 시간!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많이 걸어 다니라는 담당의의 조언대로 열심히 해보려 했던  같은데, 실전에서는 소용이 없더라. 등산한 것처럼 자꾸 쑤셔오던 다리. 마셔도 마셔도 해결되지 않던 지독한 갈증.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편이 슬슬 걱정되던 마음은 보너스.


평소에는 영화 세 편 정도면 충분했던 비행 여정들. 임산부에게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어찌나 따분하던지. 결국 할 수 있는 건 야금야금 당충전. 달콤한 주스를 어찌나 많이 마셨던지!


어찌 됐든, . . . . . . . . . 인천공항 드디어 도착.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먹은 음식들이 켜켜이 쌓여 얹히지도 않았고, 그에 따른 구토나 어지러움증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입국장으로 나가서 계획된 3 간의 한국 일정을 즐기기만 하면  . 한국에 입국하던 12 당시, 미세먼지가 심각 수준으로 올라왔던 터라,   역시 걱정되었지만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 비하면야) 어찌 되었든 무사 비행을 해냈다는 희열감! 그와 동시에 호기심도 번뜩였다. 미국에서 보낸 임산부 일상과 한국에서 마주하는 시선에는  어떤 미묘한 차이가 있을까. 그렇게 미국 산부인과   경험자의 소박한 한국 여정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뉴욕에서의 짧은 결혼기념일 여행을 마치고 뉴욕 공항으로 향하던 길. 한국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어떤 일들이 짠 펼쳐질까.
황홀했던 뉴욕에서의 풍경만큼이나 특별한 추억이 한국에서도 켜켜이 쌓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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