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듯한 무더위가 어김없이, 오늘도 이어진다.
그러려고 하는 건 아닌데 미간이 잔뜩 찌그러진 채로 버스를 타러 간다.
친정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지하철까지 걸어가서 5호선에서 2호선으로 한 번 갈아탄 후, 을지로 역에 내려 명동입구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이런 날에는 에어컨 바람이 거침없이 나오는 그 어딘가에서 이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인공적인 시원함을 한껏이나 느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뚜벅 발걸음이 축축 처진다.
이번 주도 친정 아빠 간병을 가는 길이다.
'딸아 이제 그만 와도 돼.
아빠가 밤에 잘 주무셔서 나도 잘 자.
이제 OO이 하고 O서방 잘 돌봐줘.
그동안 오느라고 우리 딸 넘넘 수고했다.
내일은 오지 마'
며칠 전 오후, 지익-울리는 진동 소리를 타고 온 엄마의 문자다.
약 반년간 병원과 친정을 오고 가며 아빠 간병을 도와드리고 있다.
몸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는 아니었겠으나 우리에게는 느닷없이 날벼락처럼 찾아온 아빠의 뇌졸중과 재활 4개월 차에 벌어진 고관절 골절 사건으로.
아빠의 몸은 물론 아빠를 돌보는 엄마, 친정 오빠,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은 성한 곳이 없게 되었다. 서로가 말을 하지 않을 뿐.
6개월을 꼬박,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친정으로 오는 딸에게 미안하셨는지 이제는 오지 말라는 문자를 보내신 것이다.
'무슨 소리야.
가야지.
아직 걷지도 못하시는데.
엄마도 잠 좀 자야지.
갈게.'
어떤 마음으로 이제 그만 오라고 말씀하셨을지가 짐작이 되기에 단번에 거절의 회신을 보냈다.
잠시 잠깐이지만 해방감을 느끼며 승낙하고 싶었던 마음이 이내 곧 죄송스러움과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아빠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아빠보다 더 고된 사람은 엄마일 텐데.
엄마는 아직도 일을 하신다. 거기에 아빠의 수발이 되어 드려야 하는 간병까지 해야 하니 엄마의 하루는 내가 감히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시간이다. 얼마나 크고 힘에 부치는 짐을 지고 계신건지 사실 나는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나마 내가 딸 노릇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내 시간을 엄마에게, 아빠에게 쓰는 것이다.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 후벼파는 듯한 가슴애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방법이다.
간병 가는 날이면 아빠에 대한 측은함, 엄마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한발 한발의 걸음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한 주의 4일은 햇빛 속에 살고 나머지 3일은 먹구름 속에 사는 듯. 일주일 사이의 온도차는 각각의 다른 세상, 다른 나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오늘도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안고 터벅터벅 걸을 뿐이다.
저 멀리서 친정으로 가는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층 버스다. 딸아이가 엄마는 매번 할머니 댁에 갈 때 2층 버스를 타서 좋겠다고 부러움 가득한 말을 하고는 한다.
딸아이의 말대로라면 매주 나는 운 좋게도 2층 버스를 만난다.
나는 이제 그만 타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리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누군가는 타고 싶어 하는 2층 버스에, 매주 올라탄다.
높은 자리에 앉아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다. 이런 상황에, 기분이 최고일 수 있다니..
우스운 생각과 함께 새삼 내가 이 길을 달리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한 주먹의 즐거움을, 움켜쥐어볼까.
잡힐까.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있기나 한 걸까.
버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
한 주 내내 힘들었을 엄마에게 운동을 시켜 드리고 그전보다 펴진 엄마의 등을 바라보는 일.
하루, 이틀이라도 설거지를 해드리며 깨끗하게 정리된 부엌을 보는 일.
그 틈을 타 어느샌가 소파에 누워 참아오셨을 단잠에 빠진 엄마를 보는 일.
수고했다며 휠체어에 기대어 앉아 고마움을 전해주는 아빠의 가느다란 목소리를 듣는 일.
되돌아오는 길, 이번 주도 그래도 딸의 역할을 잘 해냈다 스스로 드는 안도감을 쓸어내리는 일.
주말 내내 보지 못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향해 달려가는 설레는 길.
.
.
.
산더미같이 쌓인 걱정과 막막함 속을 헤집어보면 그래도 나를 웃게 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들의 조각들을 모을 수 있다.
삶은 그러고 보면, 그러한 모든 덩어리와 편린들의 총합이 아니겠는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절망과 슬픔의 일들, 그리고 그 사이에 촘촘히 박혀 실낱같은 빛을 발하고 있는 행복과 기쁨의 일들.
그것들의 총합.
더 얹어서도, 더 빼버려서도 성립되지 않는, 내 삶의 총합.
삶에는 모든 밝음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그림자 같은 어둠이 있는가 하면, 그 어둠이 짙을수록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빛과 같은 찬란함이 있다.
어둑한 밤의 절정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밝혀오는 여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종 짙게 드리워지는 밤의 그림자는 삶을 삼키어버릴 듯한 기세로 찾아오지만 그 위에는 더 짙은 빛이 덮고 있음을.
그러니 삶이란 터널같이 끝도 보이지 않는 서늘한 어두움 속에 놓이더라도, 다사롭게 비춰오는 빛줄기를 찾고 찾아 그것을 붙잡고 가는 것이 아닐까.
칠흑 더미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가느다란 빛을 찾고, 찾아서.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흑암 같은 시간도, 그 속에서 빛나고 있는 빛의 줄기를 찾아가는 시간도. 그 모든 것이 내 삶이라는 것을, 알 것도 같다.
그러니,
끌어안아본다.
해어지고 너덜거리는 듯 하나 영롱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나의 모든 시간을.
우리의 모든 시간을.
- 언젠가는 이마저도 그리워질 이 날에
짧지 않은 기간 고군분투하고 있는 친정 가족과
든든하게 나의 삶을 받쳐주는 사랑하는 나의 남편과 딸아이, 나의 가족을 생각하며.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댓글과 구독으로 응원해주시면 하날빛의 글쓰기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