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공직 생활을 마치고 나니 당장 할 일이 있지는 않았다. 더구나 짧은 시간들이었다고는 하나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이기도 해서 쉼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잠시라도 다른 나라를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이왕이면 보지 못했던 도시와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싶어 샌프란시스코를 생각했다. 도시의 혁신을 이야기 할 때 샌프란시스코는 현대적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싶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있어서 기업 생태계의 혁신을 끌어가는 스타트업들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겠고, 유명한 게이스트리트가 있는 것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 문화를 경험할 수도 있고, 블루보틀의 도시인 만큼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무렵 연세대 김동노 교수님이 베를린을 권하셨다. 최근 베를린이 유럽에서 주목받는 도시 중의 하나고, 프라이부르크와 슈튜트가르트를 가 보기는 했으나 짧은 체류였을 뿐이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 부터 독일의 사회적 체제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던 편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겠다 싶어서 교수님의 도움으로 베를린 자유대학 한국학과의 방문교수로 갈 수 있게 되었다.
8개월여 베를린에 머무르며 베를린 자유대학의 이은정교수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마련했고, 연구공간도 주어져서 자료를 뒤적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한 8개월의 시간은 독재정권 시절에 만나 마음편히 손잡고 다녀 보지도 못한 세월을 보상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작 베를린에 있을 때는 보고 들은 것을 특별히 기록하지는 않았는데, 다녀와서 간간이 페북에 올렸던 동정들이 궁금했던 지인들의 요청에 의해 이야기하러 다니면서 비로소 정리해 본 글이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을 테고, 처음 부터 다 알지 못했던 것도 있을 터이다. 이 이야기는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내가 받은 통찰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샌프란시스코에 갔더라도 관심사는 '도시'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유사한 자극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저 우연히 베를린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느끼게 된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 다시 정리해 본 것이다.
이왕 정리하는 김에 베를린에서 느꼈던 몇가지 문제의식을 덧붙였다. 모두 새롭게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것이다. 하승창의 넥스트플랜이라는 이름의 소책자를 만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공감대가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문제의식들이 커져 가는 것들이다. 배달노동문제나 기후위기 문제등은 아마 코로나로 인해 더욱 문제가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머물렀지만 베를린에서 지냈던 시간은 우리 사회의 다음 의제들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 볼 수 있었고, 아내와의 시간도 다시 오기는 힘들것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새삼 베를린과의 우연한 만남에 감사한다.
베를린에 관한 정보는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손관승의 베를린에서 숨은 행복찾기, 손관승, 노란잠수함, 2018> 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용각주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일부 인용도 사용했음을 부기해 둔다.
이 글에 사용된 사진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와 아내가 직접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