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 가혹한 아름다움.
가난에 대한 소고
arco.choi - 찍고, 쓰다.
행복한 감정으로 포만감을 느끼기에는 꽤나 퍽퍽한 삶.
세상살이 고충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 우리는 거먼 밤을 광염으로 채우고 있었다.
문득 이 광염의 밤 속, 우리 모습이 만성 종기 환자 모임처럼 느껴져 왠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다 마주한 아스라한 길목에 주홍빛 가로등 아래, 나는 생각했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뜬금의 빗금도 밟지 못할 만큼 말 같지도 않은.
어쩌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을지 모를, 지리멸렬한 물음으로 꽤나 강렬한 갑갑함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한 번은 생각해 보기로 했다.
분명히 '그 가난'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텅 빈 지갑 따위로는 정의할 수가 없었다.
무용한 생각 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이런저런 물음표를 떠올리며 가로등 몇 개를 지나쳤다.
그럼에도 역시 소득이 없어 인중을 글적거리던 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의 말을 떠올렸다.
"가난이란, 하지 못한 것의 이름입니다"
당시 10분 남짓한 영상을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스스로를 기억해내며,
동시에 "그것 말고는 딱히 정의를 내리기가 껄끄러울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일면식 없는 그가 멋지게 느껴졌다.
어스름한 골목을 뒤로 허연 시멘트로 쳐올려진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 다다랐다.
취기와 광염의 흔적들이 온몸에 배어 당장에라도 씻고 싶었지만,
아직은 생각을 멈추고 싶지 않아, 단지 안 구석에 자리한 흡연구역에 쪼그려 앉아 한대를 태워 올렸다.
정체된 듯 점잖게 흐르는 바람 탓에 담배 연기는 묵직한 모양으로 허공에 쌓여갔다.
입 밖으로 빠져나와 허공에 층층이 쌓여가는 연기는 국민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교보재로 사용하던 지점토와 닮아 있었다.
순간, 만질 수 있다는 착각이 이러, 허공의 연기를 향해 손을 뻗어 올렸다.
하지만 잡히기는커녕 뻗어낸 손의 움직임을 피해, 연기는 본연의 성질로 쪼게 지듯 갈라져 버렸다.
"가난이란, 하지 못한 것의 이름입니다"
어쩐지, 잡히지 않는. 그러나 형태를 띠고 있는 어떤 것.
그것은 볼 수 있지만, 느낄 수 있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누리거나 소비하고 있지만,
나는 갖지 못하는 상태랄까.
허공에 뻗은 손 안으로 아무것도 붙들리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가쁜 숨을 내쉬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성실한 바보이자, 가난에 찌든 환자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