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우리가 완벽한 타인이 되기까지
arco.choi - 찍고, 쓰다.
휴일 밤을 관통해, 새벽을 향해 걸었다.
뜨거운 열기가 도심을 가득 채우며 일렁이던 토요일 밤이 일요일로 한 장 넘어간 밤.
새벽을 향해 걷다 보면 이전에는 전혀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속삭이듯이 들려온다.
노트북이 든 무게를 지탱하는 가방 끈의 연결고리가 삐걱거리는 소리
나일론과 면이 애매하게 섞인 소매가 스치는 소리
이따금씩 제한 속도를 넘어선 듯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이동음
나는 이런 무용하다고 느끼던 것들이, 기분 좋게 속삭이며 유용함을 뽐내는,
그런- 새벽이 좋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걷다 파란 새벽을 감각하기도 전에 낮이 되어버렸다.
왠지, 시간이란 놈에게 내 새벽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조금 걸었다고 그새 배가 고팠다는 아니고, 사실 이틀간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근 이틀 만에 느낀 배가 고프다는 감정이 왠지 낯설다.
주변 지리를 쓱 훑어보니, 번화가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걷고 걸어 번화가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이, 싸고 푸짐하게 주는 24시간 국밥집에 들어갔다.
이런 변두리 동네에 24시간 영업하는 국밥집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러다 정말로 문득
국밥을 먹고 지나간 사랑의 파편을 떠올리다니
정말 무드 없는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이른 아침, 변두리 어느 24시간 국밥집에서 실소가 터졌다.
어이가 없지만 생각해보면 너와 나는 이 시간대에 집 바로 앞, 24시간 국밥 집을 자주 찾았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국밥이 아니라, 매운 갈비찜이었지만.
여하튼 그때도 매번 이런 감사함을 느꼈었고, 남김없이 쓱싹 한-그릇을 해치웠었다.
그리고는 식후 약초인 담배 한 개비를 위해
이런 사소한 일들과 대화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자니 괜스레 수줍수줍하며 몸이 베베 꼬였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녀석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은,
거대한 어떤 사건들로써 보다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무용하다 느끼던 자그마한 사건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놀랄 거야- 행복이라는 놈도.
갑자기 내가 해일처럼 다가가면, 아마 감당도 못할 거야, 그럴 거야.
나무늘보만큼은 말고 조금은 천천히 다가가는 게 맞는 거 같아, 아마 그럴 거야.
이제는 조금은 완벽한 타인이 된 너를 기억하니, 왠지 새롭다.
이별에 치닫게 된 과정이 어떠했든 네가 정말 행복한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행복했던 만큼 우리 사랑은 해일 같았던 것 같아.
그것도 전대미문의 초대형 해일이랄까.
그렇게 서로 다른 각도와 방식으로 달려들었던 해일 같은 거대한 감정이,
감당치 못할 수준이었을지도 모르지.
네가 밉다고 했지만 난 단 한 번도 너를 미워한 적이 없었어.
너는 나의 뮤즈였고, 사랑이었고 유일한 O.N.E였으니까.
진심으로 이별에 치닫게 된 과정이 어떠했든, 네가 정말 행복한 감정으로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