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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Feb 03. 2024

귀갓길

어떤 의식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하나의 의식이다.

신성한 습관이자 삶을 지탱하는 근육이다.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가능한 빠르게 걷는 것은 미덕이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가능한 빠르게 벗어나라.

절대 서두르지 말고, 가능한 우아하게 탈출하라.


여기선 쉬어가면 안 된다.

이 영역은 건물들의 점유 공간이다. 그들의 서식지이자 사유지다.

도로는 탈것들이 점령했다.

텃세를 부리며 초록불이 되어도 횡단보도를 내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어리석은 나는,

이곳은 예외라고 규정한다.

이곳은 예외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감사할  모르는 것에 대한 벌로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움푹 파인 홈에 걸려 고꾸라질 뻔한다.

엉망진창이네.

그 애가 웃으며 말한다.


지난한 서식지 행렬을 통과해

역시 도심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전동차를 탄다.


인파 속에서 움츠러든 어깨

수채 물감처럼 번진 아이섀도

피로감으로 창백하게 질린 낯빛으로

계단을 오른다.


여기야!


청과물상회에서 코코넛 젤리를 팔고, 부엉이 조각상을 파는 서점이 있는 곳.

나는 척추를 세우고 걷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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