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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Feb 08. 2024

능숙하다는 것

선을 지킨다는 것

더불어 사는 건, 더브러 과자를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야.

이런 아재 개그를 적을 줄, 더브러 과자를 먹을 땐 미처 몰랐지.


오가는 웃음, 소통 방식이 무미건조하더라도, 해치지 않는 말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럭저럭 온화한 분위기 형성.  

설령 마음에 없는 가짜 말을 하더라도, 그 무탈한 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됐다면.

진짜 말을 해야 온전히 사는 것 같던 시간도 나이가 들면

굳이 그 말을 해야 할까, 싶은 거야.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보호색처럼 본능적으로 보호하는 거야.

그래, 그런 날들이 쌓여가는 거야.


더불어 사는 건, 선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련되고 기품 있게 선을 지키는 것

무엇이 적당한 선인지 알고 이해하는 것

그 선이 학습되면, 숙련된 기술자처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선을 고수하다 보면 그 상태가 굉장히 편안해지는 날이 올 거야.


누군가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건 다칠 수 있어

그 선 뒤에 숨어. 최대한.

새 사람 만나 사랑하는 것도 잊고, 새 친구 사귀는 것도 주저하겠지만

운이 좋다면 고독하고 선을 잘 지키는 노인이 될 수 있어.


다만 그리울 거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얼마나 다정한지,

나를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는 얼마나 반가운지,

같이 소리 내 깔깔대며 웃는 것은

온몸에 피가 도는 생명체를 끌어안는 일만큼이나 멋진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을 거야.


어쩌면 능숙하게 선을 지킨다는 건, 그런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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