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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Feb 10. 2024

편지

푸른 하늘이 생긴다면

더미 사이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책들은 저마다 봉우리를 만들었다. 

책장은 이미 포화 상태고, 

너는 이미 나를 잊었거나

너에게 나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내가 너에게 읽어줄 책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여기 봐, 첩첩이 쌓인 책들 덕분에 내 방에는 곧 푸른 하늘도 생겨날 것 같다.

대기가 형성되고 새로운 행성이 만들어지면, 

제일 먼저 우리가 최초의 생명체가 되자.


그럼 나는 너에게 시를 읽어줄게.

이 행성의 최초의 시가 될 거야.


언제나 아름다울 너에게

내가 한때 지구란 행성을 살았음에 증인이 되어줄 너에게 

내가 심장 뛰는 생명체로 사랑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준 너에게

불안으로 요동치던 길에 이정표를 세워준 너에게

그 이정표에 찬란한 책임감을 걸어준 너에게


새로 생긴 행성에서 영화와 케이크를 발명하고, 

하늘을 감상하는 기술을 단련하자.

매일 같은 길도 지루함 없이 산책하는 법을 터득하고,

바나나 나무도 심자.


그 중 나의 우선순위는 너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

이것은 너에게 주는 꽃다발.

최초의 행성에서 너에게 읽어줄 시.  

이미 소중한 것을 잃고 백발이 된 내가 너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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