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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Jan 31. 2024

출장

너에게

그날 바르샤바 공항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활달한 승무원이 건넨 쵸콜렛을 먹고

저만치 납작하게 엎드린 이름모를 풍경을 봤다. 

대지는 검고, 불빛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불빛을 그러모아 꽃다발을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었다.

그 찬란함을 능가할 환한 탄성이든 뺨에 떠오르는 부드러운 미소든 뭐든 기대하면서. 


호텔이 있는 역에 도착하자 한밤중의 공기는 검고 차갑다.  

서늘함 속에는 미지의 설렘이 숨어 있다.

미지는 양면의 감각을 동반한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드는 호기심 반, 그렇다고 경계심을 낮출 순 없다. 

어디선가 네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동의 없이 너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너까지 동반해 경계심의 날을 세운들,

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 외곽의 인적 드문 역전 광장에 서 있을 뿐이다. 그 뿐이다.


삼삼오오 모인 택시 중 한 대에 짐을 싣는다.

차 안은 국적불문하고 눈에 익은 것이 놓여 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단층 건물이 있다.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 운전사는 룸미러로 눈을 맞추며 질문한다.

그리곤 이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그 사람은 또박또박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목소리는 다정하다. 덧니처럼 어긋난 감각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키오스크에서 늦은 체크인을 하고 찾아간 방에는 

아까 본 어둠이 낮게 코를 골며 졸고 있다.

너는 어둠을 흔들어 깨우고, 방을 둘러본다. 


바닥은 까실한 감촉의 카펫이 깔려 있어.

이불은 부드럽고 폭신해.  

여기 누워서 웰컴 간식을 먹어봐.

자,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짐을 풀어. 

옷장 앞에 붙은 전신 거울 좀 봐. 

호텔에서 회의장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찾아봤어?

잠깐만, 여기 좀 봐. 


발코니에 선 너는 한밤중에도 환하다. 

아뿔사, 네가 대지의 불빛을 그러모아 마치 꽃다발처럼 쥐고 

웃는다. 

기어코 나는 그 불빛을 네게 선물했구나.


자정 넘은 시간, 청량하고 서늘한 공기가 자욱한데

건너편 집 거실은 대낮처럼 밝다.

이른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창가에는 커튼도 있지 않고,

사방은 따뜻한 불빛으로 차올랐다. 

그 한 가운데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나이든 여자가 여행 가방을 챙긴다. 

목에 두른 스카프는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새처럼 움직인다. 


나는 너와 함께 한참을 서 있다.

이제 자야지?

저물었다가 다시 떠올라야지. 떠오르기 위해 일단 쉬어야지.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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