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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Jan 29. 2024

허기

광화문에서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으면 

불현듯 허기가 느껴진다.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던 그때의 시간은 

모두 망각되고, 엉뚱하게 허기만 남았다.


고양이 얼굴을 가진 그 애는 맛있는 칼국수집을 알려줬고,

어쩌면 마주 앉아 국자로 뜨거운 국물을 퍼올렸다.

롱부츠의 세련된 그 언니는 와플이 맛있다는 미술관 카페를 소개했다.

아, 언니가 없으면 내 삶은 한낱 빈껍데기일 것만 같았다.


문 닫은 단골 가게 앞 벤치에 앉아서 전생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때의 나는 뭐든 영원할 줄 알고 경박하게 웃고 있구나.


이름을 모두 망각하고, 홀로 광화문 거리를 걷는다.

잊힌 이름은 이상하게 허기로 남았다.


한때 꿈꾸던 것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대신 익숙한 간판이 이정표가 되어 이곳이 현실임을 일깨운다.

어디로든 현실이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허기의 골이 깊어진다.

허기가 움직인다. 

적극적으로 꿈틀댄다. 

누구나 허기를 주목하기엔, 이곳너무나 넓고 모두가 익명이다. 

허기의 비명도 익명이다.

 

이미 망각한 이름에 대한 서글픔도 잊고

이름 없는 나는 

허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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