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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Mar 06. 2024

오솔길에서의 대화

어떤 꼴 보기 싫음에 대해 

늦은 밤 오솔길 나무들은 모두 고요하다. 

한낮에는 햇살을 받으며 다정하게 손짓하던 신록에게 말을 건넨다.


그날 대화에서 차가운 미래를 봤어.

그때 좌절했나, 무서웠나. 

아니, 불쾌했지.


섣불리 판단한 걸까.

근거 없는 상상이 감정을 흔든 걸까.

'만약'이란 추측이 너무 많았을까.


불빛이 닳아가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 나무줄기는 고동색으로 매끈하게 뻗어 있다.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다.

손을 뻗으면 나무들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통로를 열어줄 것 같다.


넌 그냥 그 꼴을 보기 싫었던 거야. 

나무가 말한다.


서로 시시덕거리는 그 행복한 꼴을 보기 싫었던 거야.

혼자를 동정하는 듯한 그 제스처가 불쾌한 거야.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무결해 보이는 어떤 행복이 부러웠구나. 근데,

완전무결이란 것이 존재할까?


어떤 웃음은 왜 불쾌할까.

한쌍이란 단어는 참 정다운데

왜 어떤 한쌍은 꼴 보기 싫어지나. 영영 등 돌리고 싶을 만큼. 


오솔길의 보도블록은 여전히 서로 어긋나고 뒤틀렸다.

그 길을 걷는 주인의 마음씨를 닮았나 보군.

설령 바람이 이죽댄들 

할 말은 없지만 

어떤 날의 나는 아주 사사로운 것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발을 내딛는다.

튀어나온 덧니 같은 보도블록을 밟으면서

나무들과 의사소통하는 법도 알지 못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법도 모른 채

홀로 불쾌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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