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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Feb 26. 2024

행성의 오류

공항에서

너무나 작은 그 행성에 오류가 생겼다. 

혼란스러운 몸짓과 언어가 사방을 채운다.

난 심지어 새벽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라면 면발처럼 빠글빠글하게 파마를 한 여성이 말한다. 

깃발을 든 남녀는 어디론가 황급히 통화를 하며 이동한다.

그럼 교수님에게 연락해야겠네. 

앞에 서 있던 검은 배낭을 멘 학생이 말한다. 

아침부터 일진이 안 좋았어.

옆에 선 여자가 남자에게 투덜대고

저만치 대각선에 선 외국인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하늘을 바라본다. 


불현듯 내게 겹쳐진 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너.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저녁 식사.

침대마다 식판을 가져다주던 분홍색 머릿수건을 한 그녀는 '아, 착오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북받쳤던 것은 '왜 하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가 났기 때문이다.

기나긴 공복 사이 네가 너무나 작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복을 깨는 첫 번째 식사인데, 늦는다고요? 

혼자 발을 동동 구른 들, 

나는 늦은 식사를 앞에 두고 너와 밥을 먹었다. 

네가 수저를 들어 흰밥을 뜨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건 그때와는 다른 혼선에 대한 이야기.

늙은 내가 발을 동동 구르지도 성을 내지도 않고 혼선에 따른 대안을 찾는다.

다음 편 비행기 일정이나 환불에 대한 답변은 군중의 웅성댐에 가려져 들리지 않는다.

우선 짐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날렵하게 스카프를 맨 이들이 일은 어서 승객에게 짐을 돌려주고 공항 인근 호텔로 보내는 일.


혼선이 빚어낸 상황은 성난 벌떼처럼 매섭게 웅웅대다가 

저마다 줄지어 수화물 벨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잠잠해진다. 

사과할 의무나 사과받을 권리, 그런 것이 있었던가?


이런 혼선에 잡아준 대안의 방에는 혼자 머물기엔 불필요하게 넓은 두 개의 침대와 

조리를 할 수 있는 간이 주방과 사 인용 식탁이 있다.

혼자서 리조트에 온 기분으로

가족이 있는 흉내를 내며 TV를 켜고 포트의 물을 끓인다.

당장 내일 잡힌 미팅에 대해 취소 메일을 쓴다.

하나, 둘, 셋, 발신함이 늘어난다. 

이건 어떤 혼선에 따른 부속품 같은 것. 

그 시작점을 따지고 들기엔 밤이 깊었고 나는 너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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