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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Feb 22. 2024

어쩌면 탄성

너가 나를 보듯

어쩌면 찌그러진 공이야.

탄성을 잃었어.


어쩌면 사용하기엔 너무 짧아진 몽당 빗자루야.

온갖 등살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구나.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편이 나을까.


죄책감이나 경솔함이 후려칠 땐

똑바로 서 있기 어려워.


햇빛가리개가 씌워진 창으로 더는 밖을 보기가 어려워.

여기가 어딘지 잘 분간되지 않아.


그럴 때면 내가 밟고 오르는 층계마다 탄성이 자자해.

탄성을 잃고 한탄하는 마음은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애처롭지.


왜 가장 소중한 건 보존하고 유지하는 게 어려울까.


그럴 땐 기억 속 늘씬한 도로를 달려 먼 곳의 풍경을 보러 가.

시간의 수풀을 헤치며 달려간 곳에는 나를 굽어보는 나무들이 있어.


잘 몰라도 안아주는 마음.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마음.


너가 나를 보듯, 나를 바라보는 그애들은 모두 초록이야.

탄성을 자아낼 만큼

눈부신 초록.


그래,

탄성은 거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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