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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의 꿈

by 임이안

꿈을 꿨다.

깨어진 거울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꿈을 꿨다. 미안해. 내 행동이 너무나 부주의해서 눈물이 앞섰다. 누군가 심장을 꽉 쥐는 것 같다. 심장은 두 손으로 힘주어 쥐어짠 걸레처럼 되어버렸다.

아빠는 설거지를 하면 행주를 두 손으로 꽉 짠 뒤, 탁탁 털어 반듯하게 널어놓고, 방을 닦은 걸레도 두 손으로 꽉 짜서 널어놓고, 세차를 하면서 사용한 걸레도 꽉 짜서 널어놓았다. 그런 아빠가 떠나면서 내 심장은 아빠가 두 손으로 정성스레 또는 습관적으로 힘주어 짜던 걸레가 되었는데 제대로 널어놓지 않아서 그 상태로 말라비틀어졌다.


깨진 거울을 애도하며 꽁꽁 언 강물 위를 건넌다. 언니가 말한 요상한 옷차림으로, 아빠의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고도 용케 넘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슴이 말라비틀어졌으므로 제대로 호흡하지 못한다. '숨 쉬어' 누군가 말한다. 오래전 도서관 선반에 꽂힌 낡은 책등에 적힌 글자. 숨 쉬어. 멈춘 호흡을 의식하고 내쉬었다가 들이쉬기를 반복한다.

꽁꽁 언 강물을 건너 도달한 곳은 나홀로 아파트다. 그곳에는 엄마를 잃은 옆반 친구와 아빠가 등산을 갔다가 꽃뱀과 눈이 맞았다는 내 짝이 살고 있다.

저기 내 방 창문에서는 저만치 자그마한 거리가 보이는데 그 거리 첫 번째 상점인 레코드 가게와 그 건너편에 있는 서점에서 용돈의 대부분을 탕진했다. 서점 앞에는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붙여놓고 그 희고 아름다운 다섯 명의 얼굴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콧물이나 덧니를 그리고 있는 덩치 큰 서점 언니가 있다. 이내 교복 입은 하굣길의 팬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면 언니는 히죽 웃으며 '너네가 다 떼가지 못하게 이렇게 그리는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서서 그 풍경을 보다가 다시 우리 집을 본다. 정확히는 우리 집이 있던 방향을 본다.

아빠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귀가하는 발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침대에 누워 방 창문에 커다랗게 그려진 나팔꽃 같은 생김새의 가로등 불빛을 보면서 숨죽이고 어떤 행진소리를 듣고 싶다. 그 소리를 보고 싶다.

까무룩 꿈속에서 잠이 든다.


사위는 어둡고 어디선가 끼익 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누군가의 아침은 이미 시작되었다. 어떤 날의 꿈에서 아빠와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 나는 그 꿈을 꾸기 위해 지금껏 살아있었다.

웃을 때가 있으면 침묵할 때도 있다. 어떤 애도는 바람 같다. 모든 것을 다 통과한다. 어떤 날의 불안이나 눈물이나 한숨이나 슬픔을 그대로 통과한다. 차갑고 청량한 기운은 꽁꽁 언 강 위를 걷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통과한다.


풍경은 바뀌어 가장 최근의 집이다. 목에 밝은 회색 털이 둘러진 짙은 회색 점퍼를 입은 아빠가 가죽장갑을 낀다. '트리를 보러 가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아빠를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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