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사 Aug 01. 2020

요령 없는 아랫것들에게 자비 베푸소서

미안합니다. 내가 먼저 연락 못해서.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기자치고는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가 있는 편이다. 사소한 전화 통화조차 피하고 메신저나 이메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콜 포비아라고 하는데 내가 꼭 그렇다. 아니, 사소한 통화는 괜찮은데 '용건 없는 통화'는 버겁다. 용건 없이 대체 전화를 왜 해서 무슨 얘길 한담.


용건 있는 통화야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업무 관계라면 일사천리다. 안부 인사, 내 용건, 상대방 의사 확인, 그리고 다음에 우리 밥 한 끼 합시다. 끝. 아름답도록 깔끔하고 합리적인 대화다.


이따금 기자실에서 한 사람과 전화를 30~40분씩 통화를 하는 기자들이 있다. 요즘 근황을 묻는다든가, 업무와 관련 없는 정치, 연예인 얘기를 한다든가. 그런 이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부럽다. 정말 부럽다. 어떻게 하면 저리 별 얘기를 다 할 수 있을까. 사실 그런 일상적인 수다, 영어로 하자면 스몰 토크에서 친분이 쌓이고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여튼 이렇게 콜 포비아로 7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는데 별문제는 없었다. 업무상 전화는 얼마든지 하니 말이다. 업무 상대방과는 목적이 분명한 대화를 하면 됐고, 시답잖은 수다와 추억은 식사 자리에서 얼마든지 나눌 수 있으니. 반주까지 곁들이면 나의 저혈압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되니 일석이조다.


콜 포비아의 복병은 결혼 생활이었다.


공포증이 없더라도 며느리라는 존재는 대체로 전화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부모는 새 식구에 연락을 요구하고 며느리는 의무감에 정기적으로 연락을 드린다. 남편이랑도 매일 2~3분 정도만 통화하는데 시부모님과 무슨 얘기를 할까. 처음에는 나 역시 귀염 받는 며느리가 되어 보겠다고 1~2주에 한 번씩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사람 고쳐서는 못 쓴다고 나의 콜 포비아를 고칠 수는 없던 것.


우리 시부모님의 반응은? 당연히 성이 난다. 어려운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이따금 전화해서 안부나 묻고 지내자는 건데 그거 하나 못하냐고. 어떤 친구들은 시부모님 의견에 동조한다. '그래. 그냥 전화 한번 해 드려.' 그게 말이 쉽지 본성을 거스르기가 쉽나. 결국 '제가 전화하는 게 좀 어색해서요. 먼저 전화 주셔요.'라고 말도 해봤다. 근데 사실 이게 우리 사회 상식상 아랫사람이 할 소리인가. 저 말은 다시 생각해도 괜히 한 거 같다.


이런 나를 보며 교회 오빠같이 세상 살가운 우리 남편은 답답해한다. 영업 사원인 내 남동생과 그의 아내도 짠해한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하세요. 형님. 식사 뭐하셨는지 이런 거요.' 1등 며느리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올케는 저리 조언하는데 나란 사람 정말 답 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올케 조언을 한 마디로 무색하게 만든다.


'야. 안 궁금한데 그걸 어떻게 물어봐.'


내 콜 포비아는 고부 갈등만 야기한 게 아니다. 콜 포비아와 결혼을 콜라보로 굉장히 가깝게 지내던 이모와의 관계도 틀어져 버렸다. 이모는 기자 출신으로 나의 진로와 취향에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이다. 좋은 커리어 멘토로 10년 이상 의지가 되었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갈 땐 꼭 몇십만원이라도 노잣돈을 보태주고, 기자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는 진로 향방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해주곤 했다.


내 결혼과 동시에 이모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모와 했던 수다가 남편으로 옮겨가고 이모가 해주던 조언을 남편에게서 받게 됐다. 그렇다고 이모와 완전 연을 끊은 건 아니고, 그의 사업이나 여러 업무를 도와줄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돕기는 했다. 밤 8시에 신혼집으로 찾아오겠단 부탁만 빼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하던 장시간 전화는 이제 PC 카톡이 대체했다.


친척 모임 자리가 어색해져 갔다. 각설하고, 훗날 엄마에게 듣기로는 이모가 굉장히 참았다는 듯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언니, 걔는 연락이나 좀 하라고 해. 나도 나한테 잘하는 조카에 잘해줄 거야.'


아아 나의 정치 세포는 출생과 동시에 사멸한 걸까. 어른들께 전화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꼿꼿하게 포비아 하나 고치지 못하고 있는 건지. 내 콜 포비아로 잃은 어른들이 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나라고 연락 따위로 누군가의 호감을 잃고 싶겠는가. 그렇다고 본성을 거르자니 담수어를 바다에서 살라고 하는 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유교 사회의 문안 인사' 문화까지 간다. 연장자가 연락에 집착하는 건 뿌리 깊은 유교의 잔재 아닐까. 부모께 조석으로 '간밤 평안하셨습니까.' '기체후 일향만강 하시온지오.'하고 묻던 수 세기 전의 이미지가 지금 왜곡되어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먼저 연락을 해주는 연장자들이 고맙다. 목사님도 있고 취재원들도 있고, 가족 중에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대화도 리드해주고 내 안부도 먼저 물어주니 여간 감사한 게 아니다. 10살, 20살 어린 사회생활 후배에게 생일날 먼저 연락해서 축하한다고 전해주고 명절이면 서로 덕담을 나눈다. 어른이 먼저 손을 내밀어준 덕에 이런 분들한텐 나도 어려움 없이 안부 연락을 드린다. 인맥 관리도 아니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에서다. '저처럼 되바라진 아랫사람을 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이랄까.


이기적인 바람일 수도 있지만, 좀 더 아랫사람들을 품어주는 연장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비를 구하는 거다. 요즘 어려움은 없는지, 잘 지내는지 먼저 물어봐 준다면 요령 없는 아랫사람들도 '아 이렇게 관계를 이어가는 거구나'하고 배우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 50%가 콜 포비아라는 점도 고려해주면 더욱 감사할 일이다. 많은 날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무래도 대화의 기술, 인간관계의 기술도 좋지 않겠는가. 삶에서 익힌 그런 기술을 아랫사람에게 베풀면 그들 역시 저절로 연장자를 우러러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Photo by Jim Reardan on Unsplash

이전 10화 이건 생리대 뭐 쓰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