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쫌.
엄마가 된 이후로 다른 부모를 만날 때마다 받는 단골 질문들이 몇 개 있다.
분유 먹이세요?
뭐 먹이세요?
밤에 몇 시간 자요?
다 그냥 정보 공유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가관인 질문이 있다. '기저귀 어디 브랜드 쓰세요?'
생리대 파동이 났을 때 여초 카페가 어디 생리대가 좋은지 공유하는 글로 난리가 났는데, 기저귀 파동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정말 별걸 다 묻는다. 특정 브랜드 제품을 쓴다고 말하면 '거기 꺼는 너무 얇아서'라든가 '그거보단 ㅇㅇㅇ(본인이 쓰는 브랜드)가 좋아요 새지도 않고'라고 꼭 훈수를 둔다. 내가 쓰는 브랜드 기저귀도 딱히 새지는 않습니다만. 식은땀.
기저귀만 훈수를 두는 게 아니다. 세상에 시어머니질 하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정작 우리 시어머니는 별 말 안 하는데 시어머니질 하는 사람은 참 많다.
아기를 임신했다고 알리자 주변에서 득달같이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임산부 영양제는 뭘 먹어야 한다. 어느 회사 제품이 좋다. 태교 여행은 4시간 이내 국가로 가야 한다. 여기까진 애정 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식생활에 겐세이가 들어오면서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한다. 커피 마시면 안 된다. 파인애플 먹지 말라. 초밥 먹지 말라. 팥 많이 먹지 말라. 식혜도 마시지 말라. 여기까지도 '그래?' 싶긴 하다. 갈수록 가관이다. 콜라 마시면 아기 까매진다. 오리고기 먹으면 아기 손가락 붙어 나온다. 이 정도는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나오는 낭설들 아닌가.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있다. 밀가루 먹으면 양수 탁해진다. 아니 그럼 서양인들 양수는 정수 처리해서 자궁에 들어가나?? 참고로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임산부의 음식 섭취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술과 커피 정도? 그것도 한두 잔까지는 의학적으로 괜찮다고 한다.
임신 중기가 되자 베이비페어를 가야 한다는 조언들이 오기 시작했다. 웨딩 페어도 안 가고 플래너도 없이 결혼식 성대하게 잘만 했는데. 마음이 살짝 찝찝하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가야 한다고 한다. 아기가 뭘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베이비페어를 가야지 '꿀육아템'을 '득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가봤다. 연중 몇 번 밖에 없는 국내 최대 규모 베이비페어다.
오전 일찍 나왔는데도 코엑스에 차 댈 곳이 없다. 어쩜 죄다 임산부다. 만삭 임산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페어라고 쓰고 도떼기시장이라고 읽는다. 여기저기 깔린 부스(라고 읽고 좌판이라고 읽고 싶다)에서는 홍보하는 소리,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북적인다. 베페 할인가라며 여기서 아니면 이 조건에 사기 힘들다는 말은 모든 상인들이 하나같이 말한다. 정신이 혼미해져서 태아는 괜찮을까 싶다. 혼미해진 정신을 잡고 보니 손에 뭔가 주렁주렁 쥐어져 있다. 지름신이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가셨나 보다.
그때를 비롯해 남의 말을 듣고 샀던 것 중 지금도 골 때리는 게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젖병 소독기. 육아에 필수라고 하는데, 이게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한텐 정말 필요가 없다. 내가 일주일에 젖병을 쓰는 횟수는 한 번도 되지 않는다. 한 달에도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이따금 장난감을 넣어서 소독하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분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에게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젖병들도 괜히 산 용품들이 됐다. 출산 전에 확고하게 분유를 먹이겠다고 결심했으면 젖병을 미리 사도 좋다. 하지만 일단 모유를 먹여보겠다는 생각이라면 출산 후에 사도 늦지 않다.
남의 말 듣고 산 장난감들은 어디 구석에 처박혀있다. 대부분이 잘 샀다고 생각은 하지만 유독 남들 다 사서 우리도 산 장난감은 아기가 잘 갖고 놀지 않는다. 아기들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다. 장난감도 좋아하긴 하는데 그냥 집안의 모든 것, 엄마 아빠, 다른 사람들이 다 장난감이다. 심지어 우리 아기는 비닐봉지 소리에 세상 다신 없을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집에 걸려 있는 그림들과 자기 방의 커튼 무늬다. 한참을 보며 환희에 찬다. 장난감은 일단은 모빌 하나 그다음에 초점책, 100일 이후쯤 가서 하나씩 사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간섭과 참견은 비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다른 사람이 뭘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강요할 필요는 없지 않나. 타인의 선택과 육아 방식에 관여하면서 자기가 더 나은 육아를 하고 있다, 더 좋은 엄마다라고 은연 중에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남들 다 하는 거, 다 쓰는 거 갖춰주지 않으면 나만 엄마 실격인 거 같다.
그렇게 간섭 받고 시달리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게 된다. 남 얘기 듣고, 카톡 하고, 육아 아이템 검색할 시간에 아기 눈 한번 더 들여보고 한번 더 안아줄 걸 하는 후회도 든다. 임신 중에도 육아 서적이나 태교를 위한 취미 생활,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에 더 집중하는 편이 훨씬 추억으로 남는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베페는 악몽으로 기억되지만 수십 권의 출산, 육아 서적을 읽으며 보낸 새벽들, 남편과의 데이트, 아기 용품을 남편과 만든 시간들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사랑스러운 시절이다. 이른 저녁 노랗게 켜진 식탁 조명에 잔잔히 깔리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남편을 기다리며 가만히 읽고 따라 쓰기도 한 시편. 스마트폰에 땀날 듯 육아템 검색하고 다른 엄마들과 연락하며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풍요롭던 시간이다. 막상 아기를 키우면서 보면 우리 아기가 그 집 아기 같지 않고 저 집 아기 같지 않은 것을. 육아는 듣고 하는 게 아니라 부딪히면서 같이 맞춰 나가는 게 아닐까.
Cover Photo by Shitota Yur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