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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뽁이 May 15. 2024

3. 새벽 2시의 낯선 손님 (3)

착한 딸 파업 7편

호랑이 엄마의 눈물

 오빠와 아빠에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고백한 후, 명절 연휴가 조금 편해졌다. 내 마음 상태를 알게 된 아빠와 오빠가 적극적으로 나를 변호해준 덕분에, 나는 가족 식사 자리에만 끼고 상 차리기나 설거지를 거의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시기가 맞아떨어져 PT 식단 관리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피해야 하니 집에 가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내 감정을 관리하기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그렇게 명절은 무사히 지났고 이제 엄마에게만 내 이야기를 고백하면 가족에게 비밀은 없었다. 그러나 엄마에게만큼은 정말 털어놓기 무서웠다. 내 기억에 엄마는 내가 회사가 힘들다고 말하거나 퇴사 이야기를 꺼내면 뭐가 그리 힘드냐고 화를 내며 나약하다며 나를 책망하기 일쑤였다. 그 외에도 내가 당신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보이면 무섭게 화를 내곤 하셨다. 나에게 엄마는 너무 엄격하고 화가 많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차일피일 엄마에게 말하기를 미루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빠의 한마디에 서러워서 많이 울었던 날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풀려고 한다. 어쨌든 그날 아빠는 내가 서운해한다는 사실에 놀라 내 방에 와서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가셨었고 이후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 원래는 내 방에 연결된 베란다에서 쌀을 가져가려고 하셨었다. 그런데 아빠와 대화 후 저기압이 된 나를 보더니 무슨 일이 있느냐며 궁금해하셨다. 아마 그동안 계속 궁금하셨을 텐데, 내가 입을 꾹 다무니 뭔가를 말해주길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나는 많이 망설이다 방문 밖을 보았다. 아빠가 불안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계셨다. 엄마만은 너무 대하기가 어려워서 한참 후에 내 마음을 말하겠다고 아빠에게 언질해 놓은 터였다. 그런데 내 방문 앞에서 서성이는 아빠를 보니 엄마가 무슨 반응을 보이더라도 아빠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화낼까 봐 계속 하지 못했던 말이라고, 그리고 엄마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족도 붙였다. 거의 처음으로 내 진짜 마음을 말해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내 어린 시절 아픈 엄마를 돌보았던 기억이 너무 힘들었다고, 심리상담에서 내가 ‘리틀 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평생 집에 있어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집에서는 늘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왔고 경제 활동을 쉬는 동안은 집안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취준이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내색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갑갑했고 눈치 보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는 늘 초긴장 상태였다.

 힘든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가난 속에서도 나를 얼마나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는지 안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나를 혼내고 소리치는 엄마가 무서웠다고, 그때마다 움츠러들며 자신감을 잃고 나 자신을 미워했다고도 말했다. 눈물을 쏟으며 늘어놓은 말들은 얼핏 상반되는 이야기 같았지만, 모두 진심이었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도, 무섭고 원망스러웠던 마음도.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오빠와 내가 마음이 유약해서 강하게 키우려고 엄하게 대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에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참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그래서 앞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기에 말이 어려우면 글로라도 표현하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내가 성장 과정에서 딱히 불만이나 불평을 한 적이 없었고 크게 요구한 적도 없어서 무슨 일이든 알아서 잘하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아빠와 똑같은 말이었다. 내가 부정적인 말을 속으로 삼켰기에 부모님도 오해를 하셨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다.


 그날 정말 오랜만에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그 무서운 호랑이 엄마가 울면서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한 발짝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엄마, 나 사랑하는 거 맞지?”


 찰나의 순간, 엄마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사랑한다는 말그리고 어리광

 퇴사 후 방문 너머로 들었던 엄마의 ‘집에서 팡팡 놀면서 유세’라는 말. 그 말로부터 나는 엄마의 애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나는 무가치한 존재구나 싶어서 너무 괴로웠다. 내가 엄마가 흔히 말하는 엄마 친구나 지인의 아들딸처럼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거나, 돈을 많이 벌어 용돈을 많이 드리거나, 여행을 보내드리거나 하지 않아서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아니, 사실은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해주는 것을 당연시했고 나는 내가 아무리 성공해도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래서 궁금했다. 엄마가 이런 나라도 사랑하는지.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지. 나는 때때로 이런 모자란 딸이라면 없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여겼기에.


 “엄마, 나 사랑하는 거 맞지?”


 내 질문에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당연히 사랑하지, 하고 대답해주셨다. 나는 엄마가 내 손을 잡아줘서 참 좋다고 말했다. 심리상담 선생님께서도 울고 있는 내 손을 잡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좋았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시기 시작했다. 엄마의 애정을 의심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주. 이날의 고백이 내 인생의 몇 없는 어리광의 기억 중 하나이다.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고, 하고 싶은 것도 숨겼다고, 알아서 잘한 게 아니라 참은 것뿐이라고. 처음으로 내 힘든 속내를 내어 보인 날이었다.


 드디어 가족 모두에게 비밀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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