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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03. 2022

나의 초능력들 42

혼자 놀기 : 심심 옹호 주의자의 탐닉

무료함의 끝에서 만나는 혜택들


심심함이 사라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심심할 틈이 없어지고 있는데 이는 기후위기로 빙하가 사라지는 것보다 심각하다. 심심하지 않은 세상이라니! 이것은 자연을 역행하는 일이다.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심심했다. 심심해서 돌도끼도 만들고 사냥한 재미들을 혼자 품기에 가슴 벅차 동굴의 벽에 낙서하기도 했다. 후세에 남기고자 했다기보다 심심해서 곳곳에 장난감처럼 남겨 놓은 것이다. 심심해서 문화가 형성되고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재미있는 도구와 간섭들이 차고 넘쳐서 심심하려면 그야말로 마음에 마음을 겹쳐 먹어야 가능해진다. 마음의 중첩으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한다. 애초부터 심심하지 않은 상태가 익숙한 탓에 모처럼의 심심할 기회가 오더라도 기피하거나 효율적으로 소비하려 계획의 시간 속으로 구겨 넣어 버린다. 마치 여백이 없는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여백은 그릴 것이 없어서 비워 두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표현기법이다.


우선 심심함이 다가올 때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시간의 잉여로만 보지 않고 덤으로 받아 안아야 할 것이다. 홀대하지 말고 정중하게 심심한 시간의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심심이 무르익는 사이 내 안에서는 모든 감각의 모공이 열릴 것이다. 비로소 창조의 캔버스가 펼쳐지고 무엇이든 그려낼 태세로 돌입한다. 물론 정적으로도 마응만으로도 가능하다. 내가 언젠가 명명한 부지런한 게으름이 시작된다. 진정한 고수는 손발의 번잡스러운 놀림들을 세상에 노출하지 않는다. 수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숙련하고 시치미를 떼고 정제된 결과만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심심한 시간의 부재는 조급함만을 양산한다. 걸음만 빨라지고 두 손은 허공을 휘젓는다. 잡히지 않는 것들을 잡아본 적이 드물어 남이 포획해 포장한 예쁜 진열대만 기웃거린다. 그 나물의 그 밥이 성에 찰 리 없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심심함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가능해서 즐겁다. 처음의 얇은 시간의 벽만 찢고 나면 그때부터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물아일체의 순간들.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준다. 어느 곳에도 없는 nowhere 내가 바로 여기! now,   here로 바뀐다. 핸드폰 없이 심지어 책도 없이 나 홀로 어디까지 심심할 수 있느냐의 지수가 있다면 그것은 창의적 예술적 가능지수와 비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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