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미치겠다. 일주일 전부터 신체 한 부위가 간헐적으로 불편하다. 통증까지는 미치지 못한 애매한 증상이다. 견디지 못할 지경이 아니라면 병원에 가지 않는 탓에 병을 키우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검사 전 의사에게 아픈 정도와 상태를 소상히 아뢰어야 하는데 설명할 재간이 없다. 한 차례 큰 마음먹고 가까운 클리닉에 갔다가 엉뚱한 검사를 받고 한 움큼의 약봉지만 안고 돌아왔으나 추후 오진으로 판명 났다. 사실 그날도 병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보다 도대체 병명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병원에 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치료보다 궁금했으나 시원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호기심은 길을 가다가도 불쑥 생긴다. 상호명이 신기하고 특이한 경우에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어원이나 사연이 궁금해 상점에 들어가 분주한 상황이 아닐 경우 묻기도 한다. 대부분의 직원은 웃으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호기심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궁금하다고 해서 자꾸 물어보는 것이 자칫 가볍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점잖게 무지의 상태로 있는 것보다 시원스럽게 해소된 상태가 더 낫다. 호기심은 단순하게 물어보고 답하는 일련의 연결고리로 끝난다면 그리 의미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호기심은 질문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아무렇게나 질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번거롭게 하거나 번잡스러워서도 안된다.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내가 가진 호기심은 산만해도 그것을 상대에게 질문으로 내밀 때에는 정렬되고 명료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의미 있는 호기심은 질문도 품위를 놓치지 않는다. 질문이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그 아래 호기심은 잡스런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호기심과 대응하는 질문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이 멈추는 순간을 죽음의 순간보다 더 두렵다. 내가 만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살아가고 있다는 정확한 증거이다. 더 나은 질문을 품겠다는 의지이고 더 좋은 질문의 힘을 그 어떤 재화나 물질적 풍요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이유 때문이다. 나를 이제껏 키운 건 호기심이 팔할이다. 그저 삶이 던지는 질문들에 가까스로 답을 하는 인생이 아닌 삶의 맨 앞에 서둘러 달려가 질문을 만드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호기심이라는 무형의 엔진을 거추장스러울지라도 늘 장착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