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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25.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18회

연필을 깎는 것만으로도

18


흰 모자를 쓴 남자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절뚝거리며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다. 직진 신호를 기다리는 버스의 왼쪽 창가에 소년이 앉아 있다. 소년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들에 놓여있다고 하는 편에 가까웠다. 아무렇게나 포착된 피사체는 의도하지 않는 사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흰 모자는 꽤 긴 거리를 지나갔다. 한 점과 점 사이에서 직선이 최단거리지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흰 모자를 주변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누구나가 어깨는 위아래로 엉덩이는 좌우로 흔들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걸 소년은 발견했다. 나아가는 것은 다양한 움직임의 총합이 아닐까. 다리만 부지런히 앞으로 내딛는다고 걷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걷게 하는 것은 다리만의 일이 아니었구나라고 소년은 흰 모자를 보며 생각했다. 비스듬히 누운 듯 앉은 소년의 한쪽 어깨를 에어컨 바람이 거듭 어루만지자 나른해졌다. 

-그 여자 아이는 다음 공연에도 올까. 

일방적인 약속의 말이 소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미치자 막연한 기대는 접기로 했다. 방 안의 재활용 쓰레기를 집 앞에 내놓을 때보다 생각의 한 부분을 망각으로 옮겨 놓을 때가 더 홀가분해진 기분이다. 그러나 쓰레기도 분리수거가 불가능한 물건들이 있듯이 생각에서도 처리 불가의 것들이 존재했다. 내가 스스로 자기 분해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거나 플라스틱 입자처럼 내 안에 들러붙어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은 있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좋아하는 시를 똑같이 공책에 옮겨 쓰기를 반복했다. 육성만큼 육필에 진심이었다. 목소리를 내기 전에 목청을 가다듬듯이 소년은 필사를 하기 전에 연필을 깎았다. 나무 재질의 연필을 커터칼로 천천히 깎는 것을 조율이라고 여겼다. 그 특별함은 자기소개 취미란에 '손으로 연필깎이'라고 적을 정도였다. 칼등을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밀며 고스란히 연필의 나무질감을 감당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너무 세게 힘을 줘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약해도 안된다. 연필은 심을 중심으로 둥그런 형태로 생겨먹어서 완성된 모양이 흉하지 않으려면 깎인 부분과 깎일 부분의 균형을 내내 염두에 두어야 했다. 연필심이 제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면 나무에 닿을 때와 흑연에 닿을 때의 차이만큼 힘과 느낌이 변하는데, 이것은 쾌감에 가까웠다. 연필의 기능은 온전히 흑연이 담당하기에 나무는 그저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연필깎이의 모든 힘은 나무 제거에 모조리 쓴 뒤라 흑연과의 만남은 위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필심을 바닥에 비스듬히 세우고 돌려가며 창끝을 만들듯 뾰족하게 칼로 갈 때에는 세상의 무엇이라도 써내려 갈 것 같은 무기를 소유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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