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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26.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19회

낭송은 위로다

19



노인은 요즘 들어 부쩍 3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그립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낭송을 좋아해 준 유일한 조언자였던 친구다. 낭송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는 이가 이 지구 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노인은 시를 노래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시를 멀리하는 것으로 친구를 애도하던 노인은 첫 번째 기일에 경기도에 위치한 납골당에 갔다. 노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송이의 흰 꽃과 한 편의 시가 적힌 종이였다. 친구가 있는 곳은 입구에 들어가 두 번째 안 쪽 벽면의 아래에 위치해 있다. 분양 가격이 낮은 곳에 모셔진 탓에 몸을 낮추지 않으면 시선을 맞추기 힘들었다. 입구에 세워진 의자를 가져다 노인은 앉아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한참의 침묵에도 노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무언가 속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기다랗게 구부러진 노인의 등을 고슴도치가 몸을 말듯 더욱 웅크린 후 오른손을 들어 구부린 상태에서 성호를 그었다. 친구는 종교가 없었으나 노인은 가톨릭 예식으로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는 손을 아래로 뻗어 유리벽에 대고는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용서를 청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기존의 의사소통을 초월하는 서로 간의 언어체계를 다시 구축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확하게 뜻과 의미를 1대 1로 연결하는 것은 가까운 사이에서는 치욕적인 행위가 된다. 그것이 품격으로 승화되면 우리는 전혀 다른 부류의 형태를 띠어도 이해 가능하다. 이내 하나가 됨을 실감하고 안도한다. 시가 노인과 친구 사이에서 그런 제2의 언어였다. 오늘 친구 앞에서 읽어줄 시는 노인이 지난 일주일간 친구를 생각하며 쓴 자작시다. 노인은 처음 시라는 장르의 글을 써보았다. 펜을 들 때에는 편지를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시가 되었다. 담담하게 추모하듯 적어가다가 구체적인 추억들을 적는 부분에서 노인은 손가락에 힘이 맥없이 빠져 몇 번을 멈추었다. 친구를 만나면 소리 내어 읽어줘야지. 했던 각오는 행하지 못했다. 관리자에게 부탁해 유리함을 열어 시를 적은 종이와 꽃을 넣었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책장에 있는 모든 시집을 책상에 올려놓고는 친구가 생전에 좋아했던 시들을 골라 크게 접었다. 막 구워낸 부푼 찐빵처럼 뚱뚱해진 시집들이 한편에 쌓여갔다. 매일 한 편씩 무려 1년 7개월 동안 노인은 하루도 쉬지 않고 녹음을 했다. 500여 편이 넘는 시낭송은 노인의 휴대전화에 담겨있다. 활자의 시가 노인의 목소리로 나와 비트로 저장되는 것은 하나의 엄숙한 예식 같았다. 유형에서 무형으로 바뀌는 이 과정이 무형에서 유형으로 바뀌는 어떠한 과정보다 숭고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상하게도 노인의 마음이 애도에서 위로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친구를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노인을 위한 일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터 친구를 떠올리는 일이 미안함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내면의 병에 관해서도 자가 치유능력을 인간은 가지고 있는가 보다. 그러니 2년 전과 지금의 노인이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차원과 본질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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