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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27. 2023

어쩌다, 시낭송 019

거울 뒤에 서서 

I     겨울은 온통 세상이 거울이다


얼어버린 모든 것은 거울의 성질을 가진다.

자신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나니 표면이 매끈해진다.

애초부터 비추려고 반질해진 것이 아니라 미끈해지고 나니 비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로 인해 그가 온전히 보인다니 나는 그것으로 흐뭇하다.

아무리 너그러워도 실물과 구분하기 위해 반대로 호응한다.

사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거울은 사라진다.

사라진 거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입냄새가 발냄새니?

거울만 보면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서 입김을 내뱉고는 했다.

잠시동안 아기맨발을 만들었다가 팔꿈치로 밀어내고 다시 입김으로 칠판을 만든다.

이번에는 하트를 그린다.

좌우대칭이어야 첫 낙엽 떨어지는 날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거울이라는 글자가 참 거울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II    정지된 물체만이 주로 거울을 차지한다    


줄곧 달리는 사물들은 거울에 관심이 없다.

비친 것이나 비추려 한 것이나 비침을 당하거나 얼떨결에 일어난 사건.

거울은 멈추어야 비로소 작동한다.

그곳에 있다고 기능하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 와야 제때에 작용하는 것이니

늘 그곳은 성전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길을 잃을 때에는 어느 건물의 벽에 박혀 있는 거울 앞에 서 본다.

거울은 거인처럼 서 있다.

나보다 키가 큰 거울은 거대한 주머니 속 같다.

그래서 비친 나 너머의 구석구석을 살피게 된다.

나보다 작은 거울은 작은 도화지 같다.

너를 본 적이 있는 겨울은 좁은 도회지 같았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III    거울이 고장 났어요 더 이상 날 비추지 않아요


https://youtube.com/watch?v=Y6B5Rfg6KS8&feature=shares

거울_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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