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음먹고 쓰기까지
막상 걷기 시작하면 운동이 어렵지 않은데 운동화 끈을 묶기가 어렵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독서가 어렵지 않은데 책을 책장서 뽑기가 어렵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쓰기 시작하면...
시. 작. 하. 면...
여기서부터도 막힌다.
글 쓰는 것은 발을 무작정 떼는 걷기와 다르고
글 쓰는 것은 눈으로 그저 보는 읽기와 다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축구보다는
투수가 타자를 향해 공을 던져야 비로소 상황이 만들어지는 야구를 닮았다.
글쓰기가 그렇다.
투수가 구질을 고민하는 그 마음이 된다. 글을 쓰는 이는.
그러다 보니 징크스가 생기고 복잡한 루틴을 가지게 된다.
그와 별개로 글 쓰는 환경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늘 요동친다.
어떤 날은 연필을 곱게 깎으면서 마음이 다져진다.
어떤 날은 러시 아워 버스 안에서 브런치 글쓰기가 쉬워진다.
어떤 날은 모니터의 시계가 날짜와 일치할 때 쓰인다.
어떤 날은 누워서
어떤 날은 걸어가면서
어떤 날은 욕조에서
어떤 날은 통화 중에
어떤 날은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고 일기장에 썼다가
어떤 날은 이게 사는 건가라고 SNS에 푸념한다.
오늘은 중요한 프로젝트에 온통 머리가 가득해 안 쓰려고 변명을 쓰다 보니 보통 때보다 더 많이 썼다.
사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처럼
작가들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 것이다.
손에서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아까부터 핸드크림만 바르고 있다.
혹시 글에서 향이 묻어날까 기대하면서-
글 쓰는 것은 배설이다.
무언가를 먹어야 배출을 하는데 글 쓰는 것의 섭취가 마음이어서 문제인가 보다.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씹히지도 않으니 구름을 먹은 듯 나올 것도 없다.
늘 글을 쓰겠다고 마음만 먹은 것이 내가 글쓰기가 어려운 원인임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냥 다른 걸 먹고 글을 쓰자.
먹은 것이 내 안에서 영양소만을 걸러내고 배출하는 것들의 구성성분을 낱낱이 기술하자.
그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의 내용물보다 알차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애초부터 마음 따위는 먹지말자.
적어도 글을 쓰겠다는 마음만큼은. 끙!
https://youtube.com/watch?v=b5ViQSE7Zfs&feature=shares
애너벨 리_에드가 앨런 포